shikishen의 기억 제4막 - 색선희준 블로그

인기 좋은 쭈쭈바계열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설레임. 때로, 성취감보다 행복한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어떤 과정을 모두 끝내놓고 나온 결과물에 뿌듯함을 느낄 때보다 행복한 기분이 될 때가 있다. 바로 설레이는 순간이 그렇다. 모든 설레임이 가슴을 두방망이질치며 행복함으로 유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기대감이 몸과 마음을 조금씩 -때로는 크게- 움직여 나가기 시작할 때의 그 순수한 설레임이 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 수 있는 동기의 부여. 그 설레임을 놀잇감이 아닌 사람-특히 이성이라면-에게서 느끼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난 하나의 행복이자 특권에 다름아닐 것이다. 그것이 사랑으로 귀결되든, 그렇지 못하고 불발탄 짝사랑으로 끝나든 그것은 운명과 타이밍의 문제-나름 비참하기는하겠다-일 것이고 내가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 순수한 설레임에 대한 찬미이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맺게 된 작은 인연이, 좋은 친구-연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 어딘지 허황된 기대감. 좋은 인상-미형의 얼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을 갖게 된 만남에 대한 감사. 이어질 인연에의 기쁨. 그러한 감정들의 앞에 선행되는 삶의 조미료 같은 감정이 설레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러저러하게 되겠지, 이러저러한 사람이겠거니 하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멋대로 상상해서 품게 되는 구체적이며 조금은 이기적인 '기대감'과는 다른 감정. 순수한 가슴속의 고동이 알려주는 그 설레임. 문득, 그런 설레임이 무척이나 그립다. 기분좋게 지른 건프라가 도착하여 상자를 개봉하는 류의 설레임-이것도 무척 좋아하지만-과는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 설레임을 느껴보고 싶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시작될 지도 모른다는 바보같은 '기대감'을 품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이 여름의 끝자락에서.

그리고 망설임. 용기없는 겁쟁이의 행동양식일까,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신중한 선택 방식일까. 단순한 자신없음일까, 과격한 확률계산일까. 자신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올바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는 만큼, 위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완전한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친구-가족-타인일 것이다. 그것이 망설임이었다고, 너는 겁쟁이라고-혹은 얍삽하다고- 이야기 되는 훗날의 시점에서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일 수도 있을 것이고, 괜한 짓을 했다고 한잔 술에 화를 삭힐 수도 있을 것이다. 과감무쌍한 존재만이 좋은 결과를 차지하는 것만은 아니고, 치밀한 계산에 오차가 개입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고민하고 망설이며 선택한 길과 방법이 언제나 최선을 이끌어 내는 것 역시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망설여보지 않고 과감하게 지르기만 하는 움직임에 조심스럽게 감점 팻말을 들어 주련다. 기본적으로 신중한 선택을 머리아파하는 나이지만, 간밤의 소나기가 지나간 후덥지근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분명하게 못 박아두고 싶은 것은, 치밀한 계산을 칭송하고자 함이 아닌, 작은 아기고양이 같은 망설임의 아름다움을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눈앞의 새로운 실타래에 앞발을 뻗어볼까 말까 하는 그러한 종류의 망설임. 예감과 느낌에 몸을 맡기고, 조건과 결과를 점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의 행동에 스스로 고민해 보는 짧은 망설임. 공부를 소홀히 한 탓-그렇다고 지금 새로 공부를 시작할 생각도 별로 없지만-에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러한, 소박한 망설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무언가에 설레여보고 망설여보고, 마침내 행동해 보고 싶다. 혼자 민망함의 불길에 휩싸여 몸을 배배 꼬게 되건 어쨌건 간에. 문제는, 나를 설레이게 만들고 나를 망설이게 만들 존재-사람? 동물? 물건?-를 언제 어떻게 만날 것이냐는 점이다. 뭐, 그걸 생각하는 동안에 작은 설레임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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