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 색선희준 블로그

'이야, 착하구나. 다 끝났다. 잘 참네요.'

 콧구멍 속에 취익취익하는 달큼한 액을 넣는 것 같은 치료가 끝나자, 의사 선생님이 웃으며 말한다. 그리고 간호원 누나의 손에 이끌려 붉은 빛을 내는 뜨거운 스탠드 같은 것 앞에 앉아, 눈을 감고 코에 그 붉은 빛의 열을 쐰다. 

 '우리 준은 병원도 잘 참고 착하네~ 햄버거 먹고 갈까?'

 이비인후과 병원을 나와 밝은 태양이 내리쬐는 연신내 사거리에 서서, 큰길 건너편에 반짝반짝 빛나는 롯데리아를 바라보며 엄마가 말한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 같은 데리버거를, 오늘도 먹을 수 있다. 콧구멍 속을 헤집는 치료는 기분 나쁘고 무섭지만, 나는 잘 참는다는 칭찬과 아주 가끔 먹을 수 있는 햄버거를 기대하며 아무 소리 하지 않고 꾹 참을 수 있었다. 나와 동생은 어쨌건 간에, 어떤 병원에 가서 코를 쑤시건 목을 눌리건 거대한 주사를 꽂아넣건 이빨을 비틀어 뽑건 잠자코 참아낼 수 있었더랬다. 치과에 간 것은 어릴 적에는 거의 없던 일이지만.

 어른이 된 지금, 롯데리아는 사실 그렇게 선호하는 브랜드는 아니다. 감자는 작고 쪼잔해 보이고, 한두 종류의 버거를 제외하면 타 브랜드보다 그닥 나을게 없다. 아무래도 눈길이 닿고 걸음이 닿는 곳에 다른 브랜드의 햄버거가 있다면 당연히 그것을 선택할 정도로. 그러나... 사실 잘 먹지도 않지만, 어쩐 일인지 이 데리버거는 포상이라는 느낌이 든다. 

 지금은 무척 풍경이 변했지만, 거리와 건물의 기본적인 얼개는 그대로 남아있는 연신내 사거리에는, 이비인후과 병원이 있었다. 안과도 있었다. 어릴적에 잔병치레가 무척 많은.. 성가신 꼬맹이였던 나는 일단 집에 있는 상비약으로 어떻게든 참아보다가, 버스를 타고 가장 가까운 번화가인 연신내 사거리의 병원을 찾곤 했었다. 그리고 치료를 받고 약을 받아들고는, 우리 형제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햄버거를 포상처럼 먹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웠더랬다. 당시로서는 매우 고급스러운 느낌이 가득했던 연신내 롯데리아에서. 

 주말 저녁에 만화책을 읽다가 갑자기 오른쪽눈이 따끔하더니 충혈되고, 다음날 아침에는 가려워졌더랬다. 주말 동안 눈을 깜빡이며 가려움을 참다가, 오늘 병원에 가보니 알러지성인데 결막염이 될 수도 있다고 하더라. 붉은 빛과 열을 내는 스탠드에 눈을 쬐고 안약을 받고 나와서, 마침 옆에 있는 롯데리아가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지금 데리버거 하나로는 양이 찰 것 같지 않아, 런치 세트 중에 가장 비싼 녀석으로 골라 점심을 떼우고, 사무실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자니, 그 언젠가의 연신내 사거리가 떠올랐다. 대략 25년은 지난 것 같은 그 날의 풍경과 무척이나 고급스럽고 비싸며 세상에서 제일 맛있던 것 같은 롯데리아의 데리버거가 생각났다. 

 ..언젠가 태어날 우리 아들 녀석은, 나 같은 잔병치레로 부모를 성가시게 만드는 녀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빅맥이건 데리버거건 와퍼건 다 사줄테니까 말야. 역시 아이에게는, 건강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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