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 색선희준 블로그

01234


 아랑전설과 용호의권이 서로 싸우는 게임이 나온 해. 그 때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으니, 아마도 94년일 것 같다. 89년부터 역사를 이어왔지만 어쩐지 힘에 부치는 게임월드와, 다른 잡지들과는 뭔가 다른 정신없는 분위기로 승승장구하고 있던 게임챔프, 그리고... 다른 잡지들이 살아있었나? 모두가 기억하는 게임라인이 태어나기 전이었고.. 아무튼 그 시절, 진 사무라이 스피리츠를 대대적으로 다루며 등장한 잡지가 있었으니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게임매거진이었다. 당시 나는 게임월드, 동생은 게임챔프를 사서 보던 시절이었는데, 이 게임매거진이 나오면서 동생은 게임매거진으로 갈아탔던..것 같다. 

 당시 게임메거진은 다른 게임잡지와는 뭔가 다른 시도를 여러가지 했었더랬다. 오래 가진 않았던 걸로 기억하지만 프라모델 스크래치 빌드에 대한 기획도 실었었고, 만화나 애니메이션 기사도 다른 잡지들에 비해 비중있게 다뤘고, 한동안 붐을 일으켰던 TFPG D&D(던전즈 앤 드래곤즈... 캡콤의 게임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은 던전드래곤) 룰북의 한글판도 발매했었다. 그리고 잡지에 초반에 직접 연재하다가 본격적으로 만화 단행본을 발매하기에 이른 전설의 걸작 BREAK AGE 까지.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강북의 명문 DS고등학교.(지금은 다른 누군가의 무언가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알파벳약자로 DS이지요) 그러나 대학에 가서 포텐이 터진 나의 중2병은 대딩 당시 경동공고를 졸업했다고 떠들고 다니기도 했더랬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BREAK AGE 의 주인공 상아=키리오가 다녔던 학교의 이름이 경동공고로 번역되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났던 BREAK AGE 를 그렇게 만나, 군생활을 하던 시절 휴가를 나와 타이밍 좋게 나왔던 완결편 10권을 종로5가 책 도매상에서 입수할때까지 나와 함께 했었다.

 이 작품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거라 생각하고, 알고 싶으시면 깔끔하게 잘 번역되어 나온 이 책을 직접 읽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을 뿐이고... 지금보면 지저분한 식자와 의미불명의 번역이 넘치고 20년의 세월이 흘러 지저분해진 구판의 모습이 초라할 따름이지만, 이렇게 다시 깔끔한 애장판이 발매되어 오랜 팬으로써 매우 기쁠 따름이라 하겠다.

 집-학교-오락실 밖에 몰랐던 중2병 오덕 뚱땡이는 20년이 지난 뒤에도 게임과 건프라의 끈을 붙들고 유부직딩이 되어 살아가고 있지만, 줏대없는 김상아는 남자도 아니오 키리오가 되어 내게 다시 돌아왔다. 막연히 게임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의 나는 이제 왼팔에 봉인된 흑염룡처럼 온데간데 없지만, 최근까지 꺼내봐서 외울대로 외운 이야기는 지금도 웃음짓게 하고 마음을 흔든다. 대충 2개월에 1권 간격으로 총 6권 완결 예정이라고 하는데, 내게 준 즐거움과 행복에 대한 의리를 지키며 따라가려고 한다.

 ....문득, 아머드 코어나 철기대전을 즐기고 싶어지는 밤이다. 그렇다고 실제로 열심히 할 것도 아니긴 하지만. 경동공고 비디오게임 동호회의 추억을 가진 모두들, 다시 한 번 상아와 하림이를 따라가 보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