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 색선희준 블로그

 누구 한 사람에게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인생에 잠시 들렀다 간 사람으로 끝나더라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고 싶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그들을 뒤로 하고 왔다. 내가 뒤로 한 것인지 그들을 뒤로 한 것인지는 정말이지 헷갈리지만, 내 인생에서 나간 사람들일지라도 이따금 내가 기억하고 또 그들이 기억한다면 내가 세상에 태어난 보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를 나쁜 놈으로 기억하고 있을 2000~2001년 사이의 모 사단 출신 훈련병들 대부분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사람이 누군가를 찾고 또 기대고 의지하게 되는 것은 외로움 탓이리라.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도 있고, 절대적인 고독이라는 것도 분명 존재한다. 고독을 고독함 자체로 즐길 수 있는 것은 정신병일 수도 있고 자기 수행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고독의 탈을 쓰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은 실로 적은 종류의 방법들 뿐이지 않을까.

 너무나 정열적이어서 초조함을 동반하는 격정적인 사랑 속에서는 외로움도 어둠 속에서 잠들어 버리겠지만, 그런 사랑은 결코 영원할 수 없기에 외로움은 잠에서 깨어 또 다시 고개를 들게 마련이다. 어떠한 상황 속에 놓여있더라도, 외로움은 사람을 집어삼킬 듯이 커다란 그림자를 발목에 붙들어 매고 고래같은 몸집으로 달려들어온다.

 그럴 때, 생명을 나누어 주신 부모님도, 피를 나눈 형제도 결코 전부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외로움으로부터 작은 방패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외로움, 두려움, 걱정, 초조를 포함해서. 거대한 장벽이 되어 저 모든 것들로부터 나를 지켜줄 것은 사랑과 의리를 초월한 인생의 동반자 만이 가능한 일일 것이고, 작은 위안의 촛불을 켜주고 외로움이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를 더듬어 평온한 일상-반듯한 평상심으로 자신을 돌려보내줄 것은 결국 의리라고 생각한다. 다 지나가 버린 사랑이거나, 한때 잠시 인생 속에 들렀다 간 존재이거나, 늘 가까이 있으면서도 결코 배신하지 않는 의리를 보여주는 지기이거나... 그 속에서 의리를 찾을 수 있는 존재가 보여주는 의리. 덩치 큰 땀내나는 사나이들의 근육을 통한 뭐시기가 아닌, 작고 초라할 지라도 진심을 엿 볼 수 있는 작은 몸짓, 행동, 말 한마디. 나는, 그걸 의리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내가 죽을 때 관뚜껑 너머로 '저 인간 그래도 의리는 있었는데'라고 중얼거려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내 인생, 나름대로 성공한게 아닐까 싶다. 깔끔한 백반 한 접시가 전해주는 적절한 포만감에서 의리라는 말을 떠올리면... 막장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