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 색선희준 블로그

 구석구석에 스며들어있던 먼지를 1400와트의 강력한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는 것은 쾌감이지만, 먼지봉투를 분리하면서 한데 모인 먼지덩어리들을 버리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 못하다.

 나는 구석에 끼인 먼지따위는 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차별로 해치우는 진공청소기 역시 별로 매력적이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고 빗자루도, 쓰레받기도 되지 못한 채로 어정쩡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기만 한데.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던 풍경과 사람 사이가 한순간에 뒤바뀌는 것도 종종 체험하는 현실이다. 사람과 사람과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서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오만가지 일들이 다 일어나게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당연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변화와 침전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귀찮음과 게으름에 패배한 무기력한 모습이 아닐까.

 진공청소기의 단호함도, 먼지봉투의 오지랖도, 먼지 덩어리의 추잡함도 조금씩 가지고 있으면서 정체는 빗자루도 되지 못하는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퇴근시간이 지나서 한껏 스피커의 볼륨을 올리자 울려퍼진 B'z의 GOLD를 듣고 있을 때는 찬란한 야근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는데, 해가 지고 일거리가 바닥을 드러낸 순간 Bump of Chicken의 K가 들리는 지금 순간은 을씨년스러운 공기가 감돈다.

 갑작스레 예정된 주말 출근이 그렇게까지 생소한 것은 아닌데, 휴가복귀로부터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은 휴가후유증 운운할 사이도 없이 일상에 복귀해 버렸다는 사실이 참으로 허망할 따름이다. 작년 이맘때에는 지인의 생일 축하 초대가수 공연을 관람하러 갔었는데 말이지...

 여행기도 미뤄두고, 강화도의 푸른밤을 앞두고 텅빈 회사 꼭대기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려니, 아침에 힘차게 돌아가던 1400와트 산요 청소기가 묘하게 사무친다. 일본 홈쇼핑 아저씨가 아줌마들을 낚으며 설명하던 그 산요는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