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구석구석에 스며들어있던 먼지를 1400와트의 강력한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는 것은 쾌감이지만, 먼지봉투를 분리하면서 한데 모인 먼지덩어리들을 버리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 못하다.

 나는 구석에 끼인 먼지따위는 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차별로 해치우는 진공청소기 역시 별로 매력적이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고 빗자루도, 쓰레받기도 되지 못한 채로 어정쩡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기만 한데.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던 풍경과 사람 사이가 한순간에 뒤바뀌는 것도 종종 체험하는 현실이다. 사람과 사람과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서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오만가지 일들이 다 일어나게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당연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변화와 침전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귀찮음과 게으름에 패배한 무기력한 모습이 아닐까.

 진공청소기의 단호함도, 먼지봉투의 오지랖도, 먼지 덩어리의 추잡함도 조금씩 가지고 있으면서 정체는 빗자루도 되지 못하는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퇴근시간이 지나서 한껏 스피커의 볼륨을 올리자 울려퍼진 B'z의 GOLD를 듣고 있을 때는 찬란한 야근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는데, 해가 지고 일거리가 바닥을 드러낸 순간 Bump of Chicken의 K가 들리는 지금 순간은 을씨년스러운 공기가 감돈다.

 갑작스레 예정된 주말 출근이 그렇게까지 생소한 것은 아닌데, 휴가복귀로부터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은 휴가후유증 운운할 사이도 없이 일상에 복귀해 버렸다는 사실이 참으로 허망할 따름이다. 작년 이맘때에는 지인의 생일 축하 초대가수 공연을 관람하러 갔었는데 말이지...

 여행기도 미뤄두고, 강화도의 푸른밤을 앞두고 텅빈 회사 꼭대기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려니, 아침에 힘차게 돌아가던 1400와트 산요 청소기가 묘하게 사무친다. 일본 홈쇼핑 아저씨가 아줌마들을 낚으며 설명하던 그 산요는 아니지만.

Comment +12

  • 소미 2007.08.26 13:50

    저녁 9시가 넘도록 야근...;;
    수고하십니다. ;ㅁ;

    글과는 관계없지만... 이 글을 보니 저도 청소기 열어서 먼지를 털어내야겠어요.
    많이 쌓였을텐데... 열기가 두렵다는...;;

    • 야근하는 날도 있고 아닌날도 있고 그런 거지요.

      청소기 소제는 잊어버리고 있다가 한번씩 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경악스럽게 더러워서 기분이 이상해지긴 하지요..

  • SMoo 2007.08.26 14:16

    나도 일욜 출근이라네. 어딜 가나 다 똑같은 게지. 그래도 사람은 많아 좋구나. 허허허

  • 중년 2007.08.26 21:31

    2학기가 되자 위기감에 합호히아 랑 인흐후흐를 맨날 들어가지만
    한숨만 뻑뻑 쉬고 수염 간다무를 보거나 SD간다무 카뿌세루 빠이타를 하는
    그런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빨리 어디론가 들어가고 싶지만 마음뿐..ㅠㅠ

    • 캡파를 하는군... 나도 어렵더라구. 게다가 온라인 게임 주제에 친구들과 몰려가서 해야 재밌던데. 혼자서 하면 영 재미가 없어.

  • 해돌 2007.08.27 01:14

    직장인들 휴가가 정말 달콤하고 짜릿하지만 그만큼에 후유증도 동반하는듯한~
    어젯든 강화도에 푸른밤은 땅콩그레와 함께 농익었지........이런 제길

    • 휴가 후유증이 어째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올해의 라군 금지 키워드는 땅콩그레가 될 것 같아요...

  • 소미 2007.08.27 15:59

    지금 갑자기 막 생각났는데...
    지나가던 벌레를 청소기로 빨아들였던 기억이....;;;;;;;;
    (청소기 안에서 이미 죽었겠죠? ;ㅁ;
    과자부스러기 같은 거 먹고 아직 살아있진 않겠지. 쿨럭;;; )

    • 과자를 먹고 거대화 하다가 진공청소기와 일체화되어 괴수가 된다면... 이토준지겠지요.. 아무리 벌레라도 그 더러운 곳에 갖혔다면 죽었겠지요..

  • 오자 마자 빡세구만...
    기운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