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 색선희준 블로그

 한낮의 태양이 고맙게 느껴지는 건 밤을 비추는 희미한 달빛과 별빛 때문이다. 밤의 어두움을 어슴푸레 밝혀주는 달과 별이 있기에 태양이 밝혀주는 낮의 밝음을 실감하기에.

 추석도 아니고 정월 대보름도 아니지만, 둥글고 둥근 달은 오늘 밤 떠올라 어둡고 스산한 공기를 밝혀주고 있다. 밤이슬이 내리는 시간에 밖에 나가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 보니 묘하게 밝은 달빛에 잠시 감상에 빠졌더랬다.

 달은 치사하게도, 낮을 피해 저녁에 얼굴을 내밀고 밤하늘을 달린다. 그럼으로 자신의 밝지 못한 빛을 은빛으로 뿌리며 스스로를 뽐낸다. 사실은 지평선 너머에서 달리고 있는 금빛 태양을 비춰내고 있을 뿐이면서도.

 사람은,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으면 속을 알 수가 없다. 배고픈지, 졸린지, 괴로운지, 죽고 싶은지. 아기는 울음소리와 투정 만으로 자신을 표현하다 보니 미숙한 부모에게 짜증과 피곤을 안긴다. 어린이는 성숙하지 못한 어휘와 몸동작으로 자신을 표현하다보니 때로는 귀엽지만 때로는 개념이 없어 쥐어박아 주고 싶어진다. 뭐, 정신적으로 어린 사람들이 늘어나서 넷상에서 세상이 제것인양 날뛰고 다니다 한 순간에 몰락하는 종자들도 왕왕 눈에 띄고.

 미술은, 음악은, 체육은, 뭔가 다른 차원의 표현이다. 단순한 오락과 즐거움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행복과 절망까지도 아우르고 표현해 낸다. 그 표현에 자기 자신을 실어내는 것, 그리고 자신을 알리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 욕구, 의미, 의지, 힘을 전하는 것. 말 한마디와 조용한 손길 하나로도 충분히 전할 수 있는 감정도 있지만, 단순하고 확고한 의지일수록 다른 차원의 형식을 빌리면 보다 넓고 깊고 크게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은 좀 더 밝은 표현으로 넘실 거릴 수 있을 것이다.

 어두운 밤하늘을, 어두웠던 중세를, 어두웠던 십수년전 과거를 비추던 것은 달빛... 표현이었다. 미약하지만 어둠을 비추던 달빛처럼 자유와 발전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표현, 옳지 않은 통치에 저항하여 다양성과 올바름을 소리지르던 표현. 그러한 표현의 역사를 지나 우리는 지금 또 밤하늘을 기고 걷고 달리고 날아간다.

 그러니까, 되먹지 못한 교육으로 억제되어 있던 의지를, 덜자란 말과 몸짓으로 표현하는 수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상처주는 것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밝고 긍정적인 표현으로 나의 의지를, 나의 마음을, 나의 위로를, 나의 힘을, 전해 나가고 밝혀 나가야 한다. 그것이 이미 몇천년 전에 고대인들이 정신적인 유희를 통해 희구했고 정의했던 것이 아닐까. 이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서투른 헛똑똑이가 될 것을 강요받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촌스럽고 쪽팔리게 느끼고 있는 자신의 표현.

 선율과, 몸짓과, 색채와, 문장을 즐기고 느끼고 표현하고 솔직하게 다루고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좀 더 희구해야만 할 영역이고 차원이고 희망이 아닐까. 차가운 밤하늘을 비춰내는 금빛이 되지 못한 은빛을 뿜어내는 휘영청 밝은 달이, 문득 그런 이야기를 걸어오는 착각에 빠졌더랬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CP1215 체험기  (10) 2008.11.17
실향민  (14) 2008.10.28
50,000  (8) 2008.09.10
40,000 Hit...  (10) 2008.07.07
비만은 나태의 상징  (14) 2008.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