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디지털 카메라가 생기면서 여러가지 사진들을 찍어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그 기록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싫게 흔들리거나 잘못 찍힌 사진들조차 그 내용의 기록 자체는 잔인하리만치 올바른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오늘 점심 때 나온 동태찌개는 매우 시원했지만, 비가 내린 컴컴한 낮 회사 근처의 공기는 차가웠고, 문득 바탕화면의 파일들을 정리하다가 들여다 본 최근 1~2년의 사진들은 선명한 기록으로 하드디스크의 어딘가에 남아있었다. 대략, 그런 이야기이다.

05년 5월 인천 국제공항에서

1년 전 동생을 북해도로 떠나보낼 때의 사진을 보면, 지금은 도무지 아무렇지도 않은 동생의 존재가 그 순간에 얼마나 소중하게 다가왔는지를 알 수 있다. 장난을 치느라 흔들리게 찍힌 사진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함이 깃들어 있고, 게이트를 통과하기 직전에 끌어안는 장면의 내 등짝과 동생의 얼굴에는 어쩐지 생소한 애달픔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공항을 빠져나와 의미없이 찍은 푸른 하늘의 풍경 사진은 슬픈 파랑색이 빛나고 있다. 지금은 다시 한국에 돌아와 열심히 취업활동을 하고 있는 착한 내 동생과의 1년하고도 5개월 전 어느날의 모습은 그런 것이었다. 그런 것들이, 카메라를 거쳐 컴터의 하드디스크 안에 남아있다.

돌아와 있는 동생의 사진들도 있지만,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친구의 사진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시절 그 존재 그 모습으로는 볼 수 없는 친구의 사진.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말해두면, 여기서의 친구는 동갑내기만이 아닌 선-후배를 비롯한 모든 지기들을 의미하는 것임을 적어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학창시절의 내 모습, 동아리 방에서 폐인처럼 늘어져 있던 친구의 모습,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던 친구의 모습, 기혼과 미혼의 경계가 나누어져 버린 친구의 모습, 그리고 술과 밤 공기가 함께 했기에 나눌 수 있던 대화의 편린으로 깃든 어둡고 붉은 눈의 피사체가 찍힌 사진들. 비록 잘 나온 사진이라고 뻐길 수는 없어도, 흔들리고 눈이 빨간 그 사진들을 혼자 들여다 보며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은 매 순간을 이별과 만남으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남겨 놓은 몇 안되는 기록을 바라보는 경의인 것이다. 지나가 버린 시간 속에 있지만 내 머릿속에 늘 현재로 살아 숨쉬는 감정들이 걸어온 길인 것이다. 그 길을 벗어나거나 그 길을 메꾸어 버리더라도 분명 그 발자국만은 어떠한 형태로는 남아있는 것이다.

사람은 매 순간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저 윗줄을 적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린 순간과는 이미 작별하여 떠나온 것이고 다음 자판을 두드리는 순간과는 가슴떨리는 만남을 가지는 것이다. 작고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극소심 A형인 나는, 이런 작은 행복을 눈치채는 것에 또 감동하게 된다. 그리고 새삼, 떠나온 순간들, 떠나보낸 시간들, 떠나보내려 하는 언젠가에 서글픔과 기대감이 뒤섞인 눈길을 이리저리 보내며 또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뭐, 꼭 동태찌개가 시원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게 된 것만은 아니다. 아니, 늘 사먹는 검은콩 우유가 오늘은 떨어졌기 때문에 선택했던 커피 우유가 너무 맛이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늘 우유부단과 흑백논리를 줄타기 하는 나는 또 이렇게 오후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전에, 저 56% 바를 72%로 바꿔와야 겠다. 다들 점심은 맛있게 드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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