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 색선희준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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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 자신의 의지로 골라서 극장에 찾아간 영화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받으면 항상 떠오르는, 용광로 속의 엄지손. 내겐 터미네이터2-T2가 그런 영화였다. 91년 봄, 중학생이 되어 당시 14세 관람가로 종로3가 서울극장에 걸렸던 이 영화를 친구들과 함께 3명이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보러갔던 그 꼬꼬마 뚱땡이 시절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아저씨 블루레이를 보고 나서 너무나 맘에 든 나머지 저렴한 가격에 올라와 있던 T2 블루레이를 약간의 고민 끝에 지른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과거 듭드 시절 얼티밋 에디션도 무척이나 갖고 싶었지만 그 존재를 알았을 무렵 이미 절판, 프리미엄이 하늘을 찌른다는 것을 알고 입맛을 다시며 포기했었지만, 블루레이 버전은 어쩐지 매우 심플한(매뉴얼 하나 없더라) 구성으로 되어 있어 오히려 부담이 없는, 그러나 현재 내가 가진 시스템에서 충분함을 뛰어넘는 화질과 음질을 제공하였으니 두시간이 어케가는지 모르게 흠뻑 빠져서 작품을 감상했더랬다.

 과거 엠본부의 옥의 티 코너에서 수많은 옥의 티를 잡아낸 기억도 새롭지만, 정말 20년 된 영화인가 싶도록 깨끗한 화질과 지금은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꽃소년 에드워드 펄롱, 강인한 여전사 사라 코너, 그리고 푸짐한 도지사님이 되어버린 아놀드 횽, 은박접시를 붙인 이홍렬 아저씨가 생각나는 롸벗 패트릭. 

 에일리언2와 타이타닉이라는 내게 있어 최고를 외치게 하는 영화의 감독인 제임스 카메론 영감님의 센스는 정녕 시대를 뛰어넘는 것 같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는 과연 저런 컴퓨터로 스카이넷 같은 하이퍼 컴퓨터를 기획할 수 있을까 싶은 장비들이나 터미네이터의 OS 표현 장면 등은 조금 실소가 나오지만, 굳이 20년 전이라는 시대 배경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리 크게 거슬리는 장치들도 아니며 CG는 여전히 훌륭하다. 어색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고 있노라니 버릴 장면, 의미불명인 장면 하나 없는 몰입감 가득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타이타닉이랑 에일리언2도 블루레이가 있나....;;;

 14살 뚱땡이 중딩 시절에 서울극장에 얼마를 내고 들어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 용광로 장면에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감상은 2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문득, 그때 느꼈던 그 거대한 화면으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래서 A/V에 빠지면 약이 없다는 말이 나오나 보다. 3 이후로 거들떠도 안보는 터미네이터 시리즈지만, 오늘 밤은 그 끝내주는 형님을 추억해 볼 수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