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 색선희준 블로그

 아마도 1998년으로 기억한다. 대학교 2학년이 되어 후배들을 이끌고 갔던 연합엠티에서 아마도 거의 처음 불판 앞에 앉아 고기를 구웠던 것이. 고기를 굽는다는 행위는 게임 속에서 사냥한 거대 몬스터를 분배하는 수단부터 지인들과의 크고 작은 술자리에서 안주겸 주찬을 만들어 내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사람과 사람 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하나의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작은, 대학이라는 비싸고 쓸모없는 시공간을 구매하는 행위 중에 있었고, 그 때 만난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소중한 인연이기에, 전혀 쓸모없다고만 치부하기엔 조금은 소중한 시공간이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나는 어딜 가나 정신을 차려보면 고기 집게와 가위를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스터디 모임을 마치고 간 고깃집에서도, 어떤 모임에서건 MT를 가도, 집 마당에 친구들을 불러모아 숯불을 피워도, 조촐하게 식구들끼리 외식을 해도. 뭐가 되었건 칭찬을 받으면 기분좋은게 사람이다보니, 저런 사소한 스킬에서도 고기 맛있게 구웠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 말이, 이 모임에 네가 있어서 잘 되었다는 말로 곡해되어 들리는 순간들도 있어서 때로는 손에 튀는 기름도, 옷에 베인 고기기름냄새도 싫지만은 않다.

 며칠 전, 어느 맑지도 흐리지도 않았던 어느 주말에, 이젠 10년지기가 된 친구들과 우리집에 모여 고기를 구웠다. 언젠가 이 블로그에다 공지했다가 날씨 탓에 무참히 취소되었던 가든파티를, 몇 년이 지나 조촐하게 지내게 된 셈인데, 이 날은 7년만에 만나는 친구녀석, 한 번 보자는 전화만 3년째 나눴던 친구녀석, 한달에 한 번은 보고 싶어서 만나게 되는 친구녀석들, 학교 후배라고 하기엔 오래 알고 지낸 여동생까지 모여서 참 행복한 시간을 보냈더랬다. 14년 전에 구질구질하고 좁은 동아리방에서 PS1으로 부시도 블레이드나 소울 엣지 등의 게임을 즐기고 갓 태어난 PC방과 오락실을 누비며 덕질을 하던 친구들은 다들 자리잡은 어엿한 직딩이 되었고, 그 중 한 명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다들 두꺼워진 허리와 턱살을 달고 나타나긴 했지만 얼굴에 낀 장난기는 조금만 옅어진채로, 그렇게 다시 모여서 고기도 굽고 다과를 나누고 PS3로 SSF4를 하면서 오붓하고 도덕적인, 실로 오덕한 시간을 보냈더랬다.

 10년 지기라는 말은 참 흔한 말이면서도, 실제로 그러한 존재들을 곁에 두고 오랜 사귐을 이어오기란 쉽지 않음을 이따금 느낀다. 사람과 사람사이는 정말 내 마음 같지 않고, 최선이고 정당하며 올바른 것 같은 내 마음도 누군가에겐 개념없고 한심하며 철 없는 정신자세일 수도 있기 때문에, 내 마음같이 생각해 주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해해 줄 수 있는, 그런 지기들을 두고 살기란 참 쉽지 않다. 아니, 뭐 이런저런 말들로 표현하고 포장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몇 년만에 얼굴을 마주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농담과 같은 벡터를 가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녀석들을 만났고 또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그 누군가에게 그저 감사할 수 밖에 없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저물어가는 이 해가 가기 전에,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게 슬슬 힘들어보이는 나뭇잎들이 떨어지기 전에 그 오후와 같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또 다시 불을 피우고, 불판에 고기를 올리고. 오붓하고 도덕적인 녀석들과 함께 회사와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의 벡터를 웃으며 나눌 수 있는 그 녀석들과 함께. 그리고 그 때도 또 그 기분좋고 마음편한 기분을 맛 볼 수 있기를.

 ....생각해 보니 또 당장 다다음주면 또 불판에 고기를 올리러 가야 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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