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 색선희준 블로그



오랫만의 만남이 아쉬워, 서로 억지를 부리며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연신내 역에 도착할 때 쯤에는 달동네 우리집에 오는 마을 버스 막차 시간이 매우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미친 듯이 달리면 못 탈 것도 없을 것 같긴 했지만, 버스로 한 정거장을 더 가서 그 한 정거장보다는 좀 길 것 같은 거리를 걸어가는 한적한 길을 걷고 싶어 그대로 엉덩이를 의자에 붙였다.

 버스를 내려, 완만한 언덕길을 이어폰의 비트를 의식하며 걸어 올라가노라니, 붉고 노란 24시간 맥도날드가 보였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그 짭짤한 감자튀김에 맥주 한 잔 하면 참으로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잠깐.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 감자튀김 하나를 테이크 아웃해서 손에 들고, 냉장고에서 출격 준비를 하고 있는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를 떠올리며 걸음을 재촉하자니 새로 발매된 게임을 구입하기 위해 게임샵으로 달려가던 그 흥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날은 더웠다. 9월이 하순으로 접어들었지만, 끝나가는 긴 연휴가 아쉬운 건지 날씨는 여름 그 자체였다. 습도가 높아 하늘도 흐리고, 휘영청 밝아야 할 달은 달무리에 가려져 있고. 집에 돌아와서 보일러도 켜지 않고 그대로 샤워실로 들어가 옷을 벗고 찬물로 샤워를 했다. 땀을 씻고 알로에향 바디워시를 바르고 물로 씻어내는 일련의 과정은 길고 지루했다. 식탁위에서 종이 봉지 안에 든 채로 눅눅해져가는 감자튀김이 가련했고, 냉장고 안의 캔맥주가 새벽고딩의 그것처럼 튀어나올 기세였기 때문에. 

 욕실에서 나와 감자튀김을 유리 접시에 올려 전자렌지에 20초. 눅눅함이 완전히 가시진 않지만, 더 돌리면 너무 뜨거워 질 것 같아서. 그리고 아이폰을 들어 페북에 나 혼자 자랑질을 하고, 드디어 새벽고딩의 앞섶을 풀어준다. 달칵. 맥주를 그대로 꿀꺽꿀꺽 마시고, 감자튀김을 입에 가져간다. ...이런게 삶의 작은 낙이지. 아니, 큰 낙이지. 우리나라 맥도날드는 감자튀김에 소금을 넉넉히 쳐 주기 때문에, 토마토 케첩은 쓰지 않는다. 매장에서 받아 오지도 않았고, 냉장고에 하인즈 케찹이 대기 중이지만, 역시 맥도날드의 감자튀김은 그냥 먹는 게 맛있다. 그리고 원래는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국산 맥주보다는 확실히 맛있는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 캔맥주는 달기만 하다. 

 ...이 글은, 그런 지난 40분간의 일련의 과정을 되도록 리얼하게 남겨두고 싶어 쓰고 있는 글이다. 내일 아침에 얼굴이 붓거나, 건강에 얼마간의 작은 데미지를 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서도 그게 지금 이 순간의 목넘김이 주는 행복보다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꿀꺽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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