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역, 울창한 작은 숲길
이야기2016. 6. 18. 07:43
종종 광주로 출장을 떠나는 길에, 광명역을 이용한다. 아침 일찍 집에서 가기 가깝다는게 이유인데, 회사에서는 자가운전으로 가는게 여러모로 효율적이라고 권하는지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빗길을 달려 아침 일찍 광명역에 도착해보니 이미 주차장 몇 곳은 만차 상태였다. 조금 거리도 있고 종일 주차가 조금 비싸긴 하지만 사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기차를 타러 발을 놀리는 도중, 그리운 정취가 콧 속으로 뿜어져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폰의 볼륨을 줄이고 발놀림을 조금 늦추니, 그 정취가 뭔지 알 수 있었다. 한 쪽에 길게 늘어선 주차된 차들과 반대로, 주차장의 담장을 따라 우거진 풀냄새가 그것이었다. 비가 잠시 멈춘 틈에 공기를 가르고 올라와, 마치 이 냄새가 그립지 않냐고 따지듯이 내 코를 파고든 그 냄새. 밤 사이 가라앉아있던 공기가 비와 섞여, 풀의 향기를 머금고 올라오는 그 냄새. 아무렇지 않게 싱그럽게 피어있는 풀들이 낼 수 있는 그 향기.
광명역을 그래도 이용하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역사를 둘러싼 도로와 달리는 챠들이 내뿜는 도시냄새, 달궈진 주차장 아스팔트 냄새만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숲의 냄새가 느껴지는 곳이 있을 줄이야.
도시와 전자파가 없으면 못 사는 몸이면서도 갑자기 자연의 낭만을 찾는 척을 하고 있는 건, 지금은 갈 수도 없고 그저 사라져버린 옛 집을 또 이 몸이 기억하고 있기 떄문일 것이다. 우리집에 처음 왔던 친구들이 입을 모아 농촌 총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던 배밭과 골프장과 공장과 양어장과 논밭이 있던 고양시 덕양구의 어느 동네. 지금은 완전히 재개발되어 그런 깡촌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그 동네.
어머니의 고향인 광주로 일하러 가는 출장길 아침에 잠시 코 끝을 파고든 정취 한 줌이, 또 이렇게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갈 수 있는 고향도 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갈 수 없는 고향집이 뇌리에 깊게 박혀있는 사람은 그래서 더 자주 추억을 곱씹게 되는 걸까. 비오는 날은 싫지만, 구로의 골목길 냄새가 아닌 어딘가의 풀냄새를 찾아가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다못해, 광명역 주차장의 담장에 우거진 울창한 작은 숲길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