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사진 출처는 다음 검색에서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PhotoView.do?movieId=50761&photoId=503048

 원래 영화는 1년에 한두번만 보는지라, 올해는 케로로 극장판과 트랜스포머2, 지아이조만 보면 볼 것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더랬다. 열거한 건 다 봤고 거기에 박쥐와 합리파특해리포터까지 본, 이제껏 살아오면서 극장을 가장 많이 찾은 한 해가 아닌가 싶다. 아무튼.

 사실 이 영화는 장근석이 나온다는 이유 하나로 선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건우(작은 건우, 작건) 역으로 뇌리에 박힌 청년이 군생활 재밌게 봤던 요정컴미의 까칠하고 찌질하지만 잘생겼다고 생각했던 명태의 형이었다는 걸 알고 나서 더더욱 관심이 가기도 했고. 물론 대학에 들어가서 참 많은 경험을 했던 시기의 유명했던 사건인지라 대략적인 내용도 멀게 느껴지지 않았던지라 어렵지 않게 이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스포일러-네타바레 같은 건 저작권이 무서워서 못 적겠고, 이 영화 재밌냐고 물어본다면 재밌다고는 말 못하겠다고 대답하겠다. 가슴아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건이기에 그 사건을 다시 재조명하고 재구성한 이 사건을 재미있다는 말로 표현하는 건 지금 이 순간에도 고인을 놓지 못하고 있을 유가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따라서 나는 그저 러닝타임 내내 숨죽이고 봤다는 말로 대신하련다. 처음부터 픽션을 왕창 가미해서 반전과 두뇌싸움과 카타르시스 따위는 완전히 제거했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오히려 무미건조하고 버석거리는 영화가 아닐까 각오를 하고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어떤 영화가 잘만들었네 잘 못만들었네 하는 평가를 객관적으로 잘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또한, 실제로 어떠한 이론적인 학습을 거치지 않은 사람들이 지극히 주관적인 잣대로 내린 결론과 사고의 과정에 대한 흔적을 객관적인 양 적어놓은 것을 싫어하면서도 잘 넘어가는, 말하자면 영상물을 볼 때 전문가적인 식견을 가지지 못한 일반인이라고 할 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오랫만에 블로그에 영화를 본 흔적을 남기는 것은, 적어도 이 영화를 통해 12년전 나의 대학교 1학년 시절 떠들썩 했지만 애석하게 묻혀버린 사건이 12년 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이 사건을 둘러싼 여러가지 이야기를 각인시켜 주었다는 점에 대한 칭찬을 해주기 위해서이다. 돈이 아깝지 않았고 시간이 아깝지 않았던 영화였다는 것만은 내게 있어 확실한 사실이기도 하고.

 배우들을 보자면... 장근석은 세간의 젊은 남자들이 질투하는 허세 어쩌구 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언론에서 떠들어대던 '싸이코패스의 서늘하고 강렬한 눈빛 어쩌구'는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선하게 생긴 인상에서 언뜻언뜻 떠오르는 생소한 표정들과 영어연기의 능숙함은 충분히 훌륭했다. 정진영씨야 뭐 잘 하는 배우이지만, 중간중간 조금 오버하는게 아닌가 싶었던 부분들이 꾸밈없이 전개되는 장면들 속에서 자신이 믿고 싶은 진실과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오류들 속에서 번민하는 모습의 해석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틀어지는 부분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배우들 중 진짜 대박은 사실 장근석의 상대역이었던 알렉스 역의 신승환씨와 알렉스 부친 역을 맡았던 고창석씨. 난 실제 부자를 데려다 놓고 찍은 줄 알았다. 사람들이 장근석의 영어연기를 많이 칭찬했지만, 신승환씨의 영어연기와 어눌한 우리말 연기의 조화는 어떤 면에서는 장근석 이상의 캐릭터성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최계장 역의 박수영씨나 김형사 역의 선우씨.. 각각 올해 보았던 연극 하얀 앵두와 뮤지컬 아이러브유에서 봤던 기억이 새로웠던지라...

 다만 아쉬웠던 것은 사건의 꾸밈없는 재구성이 목적이었던가 싶을 정도의 구성이다보니 피해자 가족의 억울함이나 슬픔이 좀 약하게 표현되지 않았나 싶은 느낌이 조금 남았다는 정도일까? 짧은 기간 개봉하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짜릿한 반전과 거침없는 전개, 통렬한 카타르시스를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한 번 볼만한 영화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