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 색선희준 블로그

 블로그에 적지는 않았지만, 2011년에는 2월달에 긴급하게 일본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리고 업무가 바뀌면서 직장생활 7년만에 외근도 종종 다니게 되고, 그러다보니 어딘가 멀리 나들이를 다녀오는 것에 대해 감각이 좀 무뎌져 있었나보다. 그러나 계절은 여름, 시기는 휴가철. 애초에 구상하고 있던 것보다 조금 어그러지긴 했지만 사촌동생 eihabu가 살고 있고, 내가 태어난 고향인 부산에 잠시 다녀오기로 했다. 1박2일이었던 이번 나들이의 목표는 소박하게도 밀면과 돼지국밥이었지만, 그 외에도 많은 소득이 있던 여행길이었다. 

1. 8월 13일 오후 2시 10분 서울역 발 구포역 도착 KTX 를 타고 나서

기차 타러 내려가는 길..

순식간에 구포역 도착.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KTX는 그 편이 매우 많더라. 거의 15분에 한 대 씩 있는 느낌? 퐐리퐐리를 좋아하는 민족성 탓일까, 나만 해도 조금 더 주고 시간을 산다는 생각으로 KTX를 찾게 되니... 일정이 급하게 변경되다 뵈니 아주 좋은 자리라고 하기는 좀 그랬지만 그렇다고 썩 나쁘지도 않은 자리에 앉아서 부산으로 갈 수 있었다. 잠시 졸다가 일어나서 택틱스 오우거를 마구 달리다보니 어느덧 목적지인 구포역에 도착.

 부산은 최근 몇 년 동안 4번 정도 찾은 것 같은데 그 중 3번은 구포역에서 내려서인지 나름 익숙한 풍경이었다. 역에 내려 곧 나를 마중나온 eihabu군과 만날 수 있었고, 작년 가을 함께 가정을 꾸린 제수씨도 함께였다. 큰 틀만 가지고 내려온 부산이었던지라 첫날 저녁은 온전히 맡겼었는데, 일단 저녁으로 추천 횟집을 가 보았다. 이제까지 가 보았던 횟집의 상식을 깨고 따라나오는 잡다한 반찬-소위 쓰끼다시가 전혀 없이 오로지 회의 맛으로 승부하는 곳이었는데 과연 '아, 회가 참 맛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맛집이었다. 서울에 넘쳐나는 깔끔한 인테리어와 많은 반찬과는 대조적인 소박한 구조의 식당에 회와 쌈을 위한 야채만이 나오는 밥상이었지만, 이제껏 먹어본 모든 회를 통틀어 첫번재를 주어도 아깝지 않은...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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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를 마치고 차에 올라 다대포 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좀 걱정을 했는데, 다대포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비가 그치더라. 다만 모든 길가에 빽빽히 차가 들어차 있어서 조금 돌다가 적당한 곳을 발견해 차를 세우고, 슬슬 걸어서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4대강 공사가 한창이라 걷기가 썩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못 갈 정도는 아니었다. 바다 냄새가 나는 쪽으로 걸어가는데 불이 번쩍번쩍하고 시끌벅적한 것이 뭔가 행사를 하는 것 같았는데, 10몇회를 맞이한 강변음악회라는 행사였다. 노래자랑이라고는 하는데 준 프로급의 참가자들이 노래를 하고, 전통가요를 부르는 초대가수들도 등장한 데다 불꽃놀이까지 하는 본격적인 행사였던지라 아무 생각없이 갔던 곳에서 의외의 수확을 건진 셈이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오르니 차를 출발시킨지 얼마 안되어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라. 참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달까... 쉽없이 차를 달려 eihabu군의 신혼집에 도착하여 맥주로 목을 축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자리에 들었다. 몸도 무거운데 여러모로 신경써 준 제수씨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 

 2. 8월 14일 오후 7시 30분 부산역 발 서울역 도착 KTX 를 탈 때 까지
 전날 무척 잘 먹고 잘 놀고 푹 잤기 때문이었으려나. 가뿐한 컨디션으로 일어나서 머리를 감고, 책장에 꽂혀있던 하루키 선생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읽고 아침을 먹은 후 잠시 TV를 보다 추천 밀면집을 가보기로 했다. 사실 아침을 매우 푸짐하게 먹은지라 점심을 먹기엔 좀 이른 감이 있었지만 동생 내외도 일정이 있고 나도 일정이 있었던 관계로 조금 이르지만 면으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추천을 받아서 간 밀면집.

빵 터졌던 메뉴겸 현수막.

만두, 비빔밀면, 물밀면.

 
 내츄럴본서울촌놈인지라(사실은 경기도민;;) 드디어 처음 먹어본 밀면은 다소 달달하고 보기보다 칼칼하지는 않은 차진 냉면 느낌이었다. 다만 정말 찰지구나..(표준어 표기 차지구나)라는 감탄사가 나오는 면발이 부담없는 느낌이고, 국물과 육수, 그리고 사이드로 시킨 만두도 감칠맛이 나는 메뉴였다. 사람에 따라 그다지 맘에 들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입에 잘 맞는 별미였다.

 식사를 마치고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사상역에서 사촌동생 내외와 헤어져,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또 놀러오리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고 후배 비오네군과 접선을 시도했다. 사상역은 부산지하철 2호선 라인이고, 내가 가보고자 했던 곳은 1호선 라인이 지나는 남포동이었다. 남포동은 일단 지난 가을에 방문해서 좋은 오락실이 인상적이었고, 거기서 이어지는 거리 자체가 재미있었던 광복동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는데, 내 생각보다 지하철이 매우 빨라서 시간이 조금 남았던 관계로 2개의 어떤 장소라는 이름의 찻집에 들어가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비오네군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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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윽고 찻집에서 오랫만에 만난 비오네군과 10월달에 있을 일본 여행에 대해서 떠들다가, 광복동에서 남포동을 거슬러가며 거리 구경을 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찌는 날씨였던 탓에 남포동의 괜찮은 오락실에서 잠시 더위를 피하며 드럼매니아 V6를 조금 즐기고, 건담베이스가 있는 서면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는 지하철을 타는 쪽이 시간을 아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당시에는 지하철을 내려가고 어쩌고 하는게 귀찮아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금액도 시간도 생각보다는 좀 들었고, 결정적으로 기사분이 내려준 곳이 목적지인 건담베이스가 있는 전자'랜드'가 아닌 전자'상가'였더랬다. 용산처럼 거기가 거긴가... 하고 내렸지만 지도를 다시보니 버스로 한두정거장 정도는 되는 거리;; 

 다시 버스 같은 걸 탈까..도 싶었지만 시원한 택시 안에서 컨디션도 조금 회복했고 모르는 거리를 걸어다니는 걸 싫어하지 않는지라 아이폰 GPS를 켜고 걸어가기로 했다 서면역 5거리에 도착해 보니 동네 자체에 횡단보도가 없다고 하더라. 길을 건너려면 무조건 지하도를 통해야 하는 다소 귀찮은 구조였는데, 지하도를 내려가보니 비오네군이 종종 들르는 게임샵이 서면 지하상가에 있다고 해서 한 번 들러보기로 하고 발길을 옮겼다. 4군데 정도 게임샵이 있었는데 3군데는 그다지 들어가보고 싶은 느낌이 들지 않아보였고, 한 군데는 다른 곳들보다 규모도 있고 보유하고 있는 게임도 제법되는지라 한 번 들어가 보았다. 의외로 찾기 힘든 프습용 하츠네미쿠 1ST 정발판 중고가 있길래 물어보니 3만원이라 하길래 잠시 고민하다가 내려놓긴 햇지만, 게임샵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은 소프트 라인업과 삼다수까지 취급하는 하드웨어들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그리운 느낌이 들더라.
 
 게임샵 구경을 마치고 목표로 삼은 건담베이스를 찾아가보니 5-6층 2개층이라는 안내와는 달리 5층 하나만 운영하고 있었는데, 상당히 알찬 구성이 돋보이는 매장이었다 .서울도 하는지 모르겠는데 약간의 할인행사도 하고 있었고, 오프매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웹에서는 절판된 프라모델들도 종종 보여서 반갑더라. 또한 FG 아스트레이 블루프레임으로 하는 건프라 체험행사도 무료로 하고 있었고, 샤아-키라-SEED의 지구연합군-라크스 클라인 등의 코스츔도 전시되어 있어서, 한가할 때 구경가면 눈요기 실컷하고 오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몇 바퀴를 둘러보다 점찍어 놨다가 지르지는 않았던 치비아트 보아핸콕과 구판 SD건담 몇개를 지르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남은 목표는 이번 부산행의 목적 중 하나인 돼지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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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나들이에서는 아이폰 어플 다음 지도를 적극 활용하며 다녔는데, 추천 맛집을 골라 돼지국밥을 먹으러 갔다. 그 골목 자체가 먹자골목인데다 대부분 돼지국밥집이라 호객행위도 좀 있었지만, 꿋꿋하게 추천 맛집을 찾아갔더랬다. 그 골목에서 3대째 이어온다는 가게였는데, 접객 매너도 깔끔한 것이 첫인상이 좋았다. 이어 나온 국밥은 개인적으로 꽤 충격이었다. 개인적으론 돼지고기를 이용한 국이라고 하면 순대국밥을 떠올리게 되는데, 돼지고기나 부속이 가진 특유의 냄새가 솔직히 썩 반가운 것은 아니다. 어릴적엔 그게 싫어서 돼지고기를 안 먹었는데(닭 빼곤 다 안 먹었더랬다) 이 돼지국밥은 그런 냄새가 전혀 없었다. 들어가는 고기도 부속이 아니라 돼지고기 수육이었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고기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담백한 국물과 부드러운 육질에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하루 더 시간이 있었다면 수육을 추가해서 소주나 맥주를 한 잔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게다가 가격도 무척 착한 5,500원... 

 그렇게 만족스런 저녁을 먹고 잠시 서면거리를 거닐어보니 서면이라는 동네는 먹고 마시고 놀기 좋은 동네였더랬다 먹자골목을 나서니 도쿄 아메요코시장을 연상케 하는 상점가가 나오더니, 길을 건너고부터는 온갖 가게들이 가득가득... 게다가 서면에서 제일 크다는 오락실을 가보니 오락실 안에 무려 디스코팡팡이 설치되어 있는데다 체감형, 대전형 게임들이 최신종을 비롯하여 독특한 게임들이 그득그득... 시간 탓에 게임은 하지 않았지만  매우 즐거운 눈요기를 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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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역에 도착하여, 비오네군과 커피를 한 잔 마시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부모님께 드릴 선물로 경주빵을 하나 사서 열차에 올랐다. 비오네군과는 10월 초에 또 만나게 될 예정인지라 그 때를 기다리기로 하며....

 발품을 좀 팔았기 때문에 바로 잠들지 않을까 했지만 잠이 오기를 기다리며 다시 잡은 택틱스 오우거가 너무 재밌던 탓일까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한 잠도 자지 않고 게임과 맥주를 즐기고, 서울역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생각보다 빨리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순수한 여행을 목적으로 부산에 간 것은 사실상 처음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상당히 가볍게 다녀온 길이었지만 가이드를 해준 사람들의 친절과 아이디어 덕분에 무척 즐겁게 다녀올 수 있었다 .이제 10월에는 일본행과 엠티가 있을 것이고 그리고 나면 내년이나 되어야 또 여행을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다음번에는 또 색다른 먹거리와 구경거리를 찾아내어 즐기고 오고 싶다. 귀한 시간 내어준 eihabu군 내외와 비오네 군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