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쟁이의 삶을 이어간다는 것
이야기/런치타임블루스2011. 11. 14. 12:39
이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나는 전자오락을 꽤 좋아한다. 꽤를 넘어 무척 좋아하며,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너무 좋아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소위 덕후라 불리우는 종류의 취미를 잔뜩 가지고 있다보니 다른 짓거리를 하느라 오락만 하고 살 수는 없다보니 지난 10년간 꾸준히 오락에 대한 열정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어물쩡어물쩡 지내고 있다가, 문득 장식장을 올려다보니 몇 가지는 좀 방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몇 가지를 들고 게임샵을 향했다.
결론적으로, 곧 오픈케이스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는 어떤 게임의 구매비용을 확 줄이는 결과를 가지고 오긴 했더랬다. 처분한 게임들 중에는 충동적으로 구매했다가 몇 분도 안하고 처박아놨던 교육용 소프트웨어부터 블로그에 클리어 후 소감을 올린 게임까지 있었다. 아끼다 똥 된 케이스도 있었고.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인데, 다음에 다음에 타령을 하며 묵혀 놓다 똥을 만드는 케이스가 내게는 몇가지나 되는 것 같다. 지른 것을 충실히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시 아니다 싶으면 빨리 털어버리는 것도 지혜라는 걸 깨닫게 된다. 실제로 결국 클리어하지 못하고 보낸 게임 하나는 이번에 제법 기여도가 높기도 했고.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할 것 없이 곁눈질로만 즐기기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것이 이 바닥인 것 같다. 내가 관심을 두건 접건 신작은 쏟아지고, 새로운 기술이 탑재된 게임들은 기존에 알 지 못했고 알 수도 없던 재미를 창출해 내고, 그것들에 정신을 빼앗기기엔 리메이크되는 과거의 명작들과 다른 분야의 즐길 것들 또한 지지 않고 세상의 빛을 보기 위해 뛰쳐 나온다. 생활에 치이고 인간관계의 끈을 붙잡고 덕후의 삶까지 이어가기엔 정력과 시간은 언제나 모자라다.
그렇지만, 언젠가부터 바귄 내 좌우명은 '노세 노세 젊어노세'. 늙어지면 기우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인생은 일장춘몽,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꿈을 이루고 꿈을 쫓아 산다는 것은 다양한 의미와 행위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내가 지금 가진 꿈이 있다면 그 중 하나가 한 번 사는 인생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재미지게 즐기고 싶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을 위해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회사일도 열심히 해서 사회적으로도 뒤처지지 않으며 즐기는 가운데 새로운 것을 스스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그것을 또 나눠보기도 하는. 그것이 내가 원하는 십일홍이요, 채워가는 달이지 싶다.
오랫만에 들른 게임샵에서 이런저런 신작들을 들춰보고 있자니 또 하고 싶은 게임들이 잔뜩잔뜩 눈에 띄더라. 그러나 하고 싶다고 다 하고 갖고 싶다고 다 가질 수 있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가 가진 시간이라는 리소스 안에서 소화할 수 있을만큼만 가져보는 수 밖에. 슬슬 발레리아 섬의 세번째 통일의 길을 잠시 멈추고, 이따금 하던 유격 대신 춤바람에 조금 시간을 투자해 볼까 싶다. 게임도, 건프라도, 사람도, 나 자신도 잃지 않는 재밌는 길을 제발 잃지 않고 질리는 일 없이 이어나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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