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는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글을 적는 시점에서 내 나이 34살. 내가 어릴 적을 기준으로 한다면 어디에 내놓아도 누구나 당연히 노총각이라고 평가할 나이. 그리고 좀 가을을 제대로 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한 달을 보냈다. 이 달에는 추석도 있었고, 회사 야유회도 있었고, 좋아하는 모임의 MT도 있었고, 취미생활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몇 개인가의 모임도 있었다. 대체로 즐겁게 보냈지만, 가슴 한 구석에서는 남자의 계절 가을을 제대로 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하루하루를 또 걸어왔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평생에 있어 여전히 가장 사랑하는 문호, 무라카미 하루키 선생님의 글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글은 15년 전도 지금도 댄스 댄스 댄스. 발 밑을 확인하며, 스스로의 스탭을 밟아가며 끊임없이 춤을 추어야 한다는 그 문장은 지금도 머릿 속에서 내 삶의 큰 지침이 되어 있다. 그 지침으로 인해서 이따금은 지칠 때도 있지만, 그렇게 지치는 편이 지치지 않고 편안하게 널부러진 시간들보다는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는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스스로에게 꽤나 관대한 나이지만 고개를 갸웃할 수 밖에 없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방향성없이, 요령없이, 그저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용을 쓰고 결국 나가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한 머리를 굴리고, 정확한 방향을 가늠하고, 그리고 추진력있게 가진 힘으로 노력하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기본 이상의 힘과 머리와 추진력은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번 가을은 내가 생각해도 매우 잘 타고 있다. 아주 제대로. 남자의 계절인 가을을, 아주 남자답게.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앓고 있는 수많은 질환 중에 치명적인 질환인 중2병의 발로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내 멋에 나는 내 스텝을 밟아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발을 밟지 않도록 주의하고는 있지만 꼭 잠시 방심하는 순간 스탭은 꼬이고 발을 밟게 되긴 하지만, 그래도 내 나름 잘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기에 전혀 다른 리듬으로 스탭을 밟는 타인을 파트너로 두게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내년의 내가 이 글을 찾아 읽게 될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대선 전의 혼란으로 가득한 시기이며, 갑자기 날이 급격히 추워져서 올해 가을 들어 처음으로 코트를 꺼내 입었고, 전북 익산에 출장을 다녀온 참이다. 그리고 위에 계속 자기세뇌하듯이 적었지만, 나름 스탭을 잘 밟아나가고 있는 중이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나를 위해 울어주고 있는 그 어딘가, 이루카 호텔의 그 어딘가가 돌핀 호텔에 이어졌던 것처럼, 단지 기억과 위로를 위해서가 아닌 그러한 어딘가와 누군가가 있어준다고 생각하면, 혼자 밟아나가는 스탭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외롭다고 느끼기 전에 먼저 재미있다고 느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추위도, 내 목숨은 커녕 내 재미 하나도 빼앗아기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 즐겼던, 지금은 없어진 연신내의 바에서 선배가 키핑해 놓은 술을 몰래 찾아 마시며 혼자 중2병을 열심히 앓던 언젠가가 떠오른 밤이다. 11월이 되면 20, NOVEMBER를 추억하며 또 술잔을 기울이기도 해야겠지만, 12월까지 이어지는 주말 동안 벌써 결정된 스케쥴이 몇 개인가. 보람없는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지쳐 나가떨어지는 건 이제 슬슬 그만하자. 내가 즐겨야 할 꺼리와 내가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말 그대로 이 세상의 사람 수만큼 있다. 만추에 다다른, 이 깊어진 가을을 타는 것도 슬슬 방향을 살짝 바꿔서 스탭을 밟아 보자. 우선 지금은, 그것만 생각하자. 어서 오라, 11월이여. 

Comment +2

  • eihabu 2012.11.01 06:44

    그 연신내의 바...나도 형하고 갔던 기억이 나네..
    나는 이 가을에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나 다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