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우리집은 실향민이다. 


 일제시대가 끝나고 38선이 그어질 무렵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오신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고혈압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일찍 생을 마감하셨다. 살아있었다면 작은 아버지가 되었을 아버지의 동생은 전쟁이 끝나기 전 할아버지의 뒤를 이었다고 하고. 그리고 남겨진 할머니와 아버지는 말그대로 한국 근대사를 힘겹게 살아오셨다. 할머니는 내가 취직한지 얼마 안된 어느 여름날 돌아가셨고, 고향의 기억을 거의 갖고 있지 않은 아버지는 두 아들을 장가보내고 지금은 경기도 어딘가에서 어머니와 둘이 지내신다. 



 아버지는 너는 장남이고, 내가 없으면 네가 가장이다, 네가 가족들을 잘 돌봐야 한다는 유언도 듣지 못하셨고, 독일이나 월남도 가지 않으셨다. 할머니의 친척들이 남쪽에 있었기에 기댈 곳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듣고 배운 195~60년대는 너무나 힘든 시절이었다고 한다. 기억도 안나는 어릴 적 동생을 잃은 아버지는 그냥 외아들로 홀로 자수성가를 이루셨다. 수많은 그 시절 사내아이들이 그렇게 커 왔듯이. 할아버지의 사진 한 장, 옷 한 벌 남아있지 않은 우리 아버지는 무엇에 빗대어 당신의 살아온 날들이 진짜 힘들었다고 하셔야 할까.


 나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를 처음부터 지켜본 것은 아니지만, 금성인지 삼성인지 모를 작은 TV 앞에 앉아서 이산가족 상봉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지켜보던 할머니의 모습을 기억한다. TV 화면 속의 사람들을 통해 남쪽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느라 잊어버린 북녘의 가족들을 뒤늦게 떠올리셨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할머니는 이산가족 이야기만 나오면 TV 속으로 들어가 버리실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언젠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었던 왕회장님이 대선에 출마하셨을 때 고향 생각을 하면서 그에게 표를 행사하셨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셨고. 그리고 금강산조차도 못 가보시고 어느 여름날 할아버지가 기다리실 하늘로 가버리셨다.


 영화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남자 주인공 덕수가 여자 주인공이자 아내 영자에게 쓰는 편지를 통한 독백 장면은 조금 노골적이라 마음에 약간 걸리는 느낌이 남긴 하지만, 그게 거슬려서 영화를 못 보겠다고 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 외에는 웃기려고 한 장면에선 웃을 수 있었고, 울라고 하는 장면에서는 울 수 있었던 그런 영화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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