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 색선희준 블로그

 결혼을 하고 나서도 덕질은 멈추지 않는지라, 이런저런 장난감이 조금씩, 착실히 늘어가고 있는데 그 새 장난감들의 사진은 찍지 않고 어째서인지 구석에 처박혀 있던 오래된 상자를 꺼내어 보는 날이 있다. 2016년 2월 말이 내겐 그런 어느날이었는데, 상자안의 오래된 장난감들을 꺼내어 먼지를 닦다보니 문득 이 피규어들이 이런저런 생각을 불러일으켜 키보드를 달려본다. 웹을 대충 뒤져보니 이 파이널 판타지 히로인즈는 2003년 정도에 반다이에서 발매한 트레이딩 피규어였던 것 같다. 종류는 총 5종에 시크릿이나 색놀이 없이 이 라인업 하나로 단종된 듯...


 1. 티파 록하트 (FF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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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취향저격 캐릭터인 파판7의 히로인 티파 록하트. 싸우는 격투 미소녀이자, 단순하지만 강렬한 몸매의 매력을 어필하면서도 소꼽친구 클라우드를 바라보는 강한 히로인. 원작의 복장을 그대로 재현하였는데, 이 시리즈가 다 그렇지만 얼굴이 누구세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요즘 피규어들이 가격이 오른만큼 얼굴도 잘 나오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저가 트레이딩 피규어의 붐이 일어나던 시기라는 걸 감안하고 봐야 할 듯. 게다가 세월이 흐르다보니 기지개를 쭉 펴는 모습이 더욱 뒤로 휘어서 좀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고보니 2015년에는 티파가 등장하는 파판7의 리메이크가 발표되기도 했었지. 과연 나는 그 작품을 적절하게 잘 즐길 수 있으려나.. 하는 우려가....


2. 셀피 텔밋 (FF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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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판8에서는 리노아가 아니라 셀피가 등장했다. 이 라인업 뭐지? 그러고보면 앞서 소개한 티파도 최후의 승리자이긴 하지만 메인 히로인이 에어리스인 걸 생각해보면 이 셀피는 또 뭔가 싶은 느낌. 아무튼, 원작의 가든 교복을 입고 무기인 커다란 쌍절곤을 든 모습. 역시 얼굴은 누구세요 소리가 나오지만, 티파에 비해 조금은 디테일을 살펴볼 수 있는 모습이다. 


 생각해보면 파판8은 여러모로 까는 사람이 많고, 당시 플레이하면서도 뭔가 내가 생각한 파판8은 이런게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막 들기도 했다. 그래도 스콜과 리노아의 세대를 초월한 사랑,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아름다웠던 비주얼, 초명곡 EYES ON ME와 OST 중 MAN WITH THE MACHINE GUN 을 머릿속에 남아있는 멋진 올드 파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3. 가넷 틸 알렉산드로스 17세 (FF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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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판 시리즈의 히로인 중에 종종 등장하는 고귀한 혈통. 무려 왕위 계승자이자 엔딩에서는 여왕이 되어 감동의 재회를 보여주는 왕녀님 가넷. 다른 작품들이 일러스트나 CG 무비 등에서 8등신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줘서 프로포션이 어색한 느낌이 없는데, 9편은 줄기차게 3~5등신 같은 느낌을 고수하는 바람에 8등신의 가넷은 좀 어색하다. 단순한 복장이나 성의없는 얼굴 조형도 한몫하는지라 제일 긴 이름의 캐릭터지만 가장 실망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파판9은 어째 숨겨진 명작 취급을 받는 분위기가 가끔 보이는데, 내겐 그냥 대놓고 대작이었다. 8편보다 재미있게 플레이했고, 엔딩의 강렬함 때문에 7편보다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기도 하고. 특히 테마곡 MELODIES OF LIFE는 요즘도 종종 꺼내들을만큼 좋은 곡이라, 언젠가 다시 꺼내어 플레이하고 싶은 욕심히 마음 한켠에 남아있다. 


4. 류크(리쿠?) (FF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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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매 시기를 생각해보면 역시 파판10이 마지막일 수 밖에 없을 것 같긴 한데.. 아무튼 파판 10에서는 두 명이 등장했는데 그 중 류크를 먼저. 앞서 소개한 티파, 셀피, 가넷에 비해 약간은 더 세부적인 디자인을 즐겨볼 수 있긴 한데 뭔가 아줌마 같은 얼굴은 이 시리즈의 특징으로 받아들여야 하려나....


 개인적으론 취향에 따라 흑마도사 루루를 주력으로 썼던 기억이 있는데, 나중에 발매된 10-2에서 메인 파티로 등장하는건 이 류크였더랬지. 생각해보면 어른스러운 루루/파인, 중간인 유우나에 비해 좀 어려보이는 느낌이었는데 10-2에서 노출도가 엄청 높은 복장이라 당황했던 기억도 난다. 얼마전에 10과 10-2가 리마스터로 발매되긴 했지만 플2로 발매되었던 당시 열심히 즐긴 기억이 아직 생생한 관계로 다시 플레이할 날이.. 오려나?


5. 유우나 (FF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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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판10과 10-2의 메인히로인인 유우나. 소환사 복장과 무기까지 들고 나름 역동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원작의 보름달 같던 얼굴과 전혀 다른 갸름한 얼굴이 되긴 했지만 시리즈 5종 중에선 가장 보기 괜찮은 느낌. 다 가린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노출이 있는 복장도 잘 살렸고, 치마의 무늬도 나름 재현해서 여러모로 5종 중 가장 튀는 것 같다.


 10-2에서 파격적인 건너로 등장해서 연인과 사별한 충격이 애를 망쳤다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진 엔딩을 보면 그 나름 긍정적인 것 같기도 하고. 생각해보니 10-2 라스트미션도 구입해서 플레이했었는데 라스트미션의 엔딩은 솔직히 좀 별로였던 것 같다. 라스트미션 자체가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그냥저냥 넘어가야 할 것 같기도 하지만.


요즘 나오는 원피스 피규어들을 보면 이것과 비슷한 크기에 훨씬 좋은 느낌을 주는데, 2003년에 YUJIN 제 2천원짜리 가샤퐁들이 창궐하던 시절의 노하우가 쌓여서 지금의 질좋은 트레이딩 피규어들이 나온다고 생각해야 하겠지? 오랫만에 꺼내보고 처음엔 약간 충격일 정도로 퀄리티에 실망했다가, 그만큼 세월이 흘렀고 내가 보는 눈도 달라졌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 조금씩 삐딱해진 피규어들이 세월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제품이 발매된 2003년으로 부터 13년이 흘렀다는 걸 생각하면서 정말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다. 또 13년이 흐르면 나는 무엇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려나. 그래도 좋은 추억으로 남은 게임 화면 한 장면, OST 한 소절, 캐릭터 한 명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