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이 끝나고
살다보니 내가 스포츠 관련으로 마음이 동해서 키보드를 두들기는 날을 다 본다. ..밤이지만. 폐회식 중계 방송을 마치고 효리네 민박2를 곁눈질하며 문득 쓰기창을 열게 되는구나.
88올림픽도 실시간으로 본 세대이긴 하지만, 그 때는 그냥 흔한 국민학생이었던지라 그냥 와 대단하다 와 호돌이 만화영화 한다 와 좋다 정도였지 무슨 종목이 어떻고 선수 누구가 잘하고 하는 것에 대한 기억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쓰다보니 마라톤 황영조 선수가 생각나는데.. 이 양반은 바르셀로나에서 메달리스트였던가. 아무튼 스포츠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조예란 것은 이 정도 뿐이다.
올림픽에 대한 기억이라고 해도 84년 미국 올림픽은 마스코트가 파로디우스의 보스로 나왔던 것과 훡코나미의 하이퍼 올림픽 94, 88 한국 올림픽은 호돌이, 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발로그(꼬챙이, 국제판에서는 베가)의 플라잉 바르셀로나 어택과 황영조 마라톤, 96년 미국 올림픽은 역시 FUCKONAMI의 하이퍼 올림픽 인 애틀랜타, 2000년 이후는 어디서 했는지 생각도 안난다. 그나마 동계올림픽은 오락실용 게임 윈터히트와 하이퍼 올림픽 인 나가노 정도 밖에는 뭐 아는게 없다. 연느님 덕분에 이번 평창 바로 전의 동계 올림픽이 소치라는 것 정도가 큰 지식이려나.
게다가 이번 평창은 각종 언론을 보고 접한 비싸고 불친절하며 자원봉사자를 홀대하고 음식은 평창렬하며 시설은 미완성에 엉망진창이라 망할 것이 뻔하다는 선입견을 주입받아 역시 나와는 관계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개회식부터 인면조를 비롯한 화제거리가 인터넷에 실리면서 그럭저럭 재미가 없진 않나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토요일, 무심하게 TV 채널을 돌리다가 편성표에 뜬 이름이 스노우보드 프리스타일. 아... 그러고보니 스노우보드 게임을 예전에 좀 재밌게 했던 기억이 떠올랐더랬다. PS1으로 나름 히트해서 오락실과 문방구 앞 기통으로도 진출했던 쿨보더즈2와 그 아류작 비슷했던 트리키 슬라이더스 라던가...
그래서 올림픽은 어떤가 하고 봤더니 예선이던가... 에서 캐나다의 맥스 페인.. 은 아니고 맥스 패럿 선수의 경기가 딱 중계 중이었다. 그 경기를 보고, 20년 쯤 전에 재밌게 했던 쿨보더스2가 떠올랐고 결국 그 중계 방송을 거의 다 보게 되었더랬다. 그게 결국 이번 평창 올림픽에의 관심으로 이어져, 매일 인터넷 포탈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키워드 정도는 알게 되었더랬다.
그래봤자 식견도 좁고 아는 것도 별로 없는지라 기억에 남는 것도 꽤나 편협한데, 역시나 적시나 제일 기억에 크게 남는건 역시 여자 컬링. 뒷 이야기와 경기 전개, 은메달이라는 훌륭한 결과, 그리고 유행어와 선수들의 캐릭터. 스포츠를 기본적으로 무시하는 나로 하여금 몇몇 경기를 실시간으로 지켜보게 만든 이 여자 컬링 한국 대표팀의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져도 재밌게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거의 유일하게 좋아하는 운동이 볼링인데, 뭔가 컬링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해서 요즘 가끔 보이는 양궁방(?)처럼 컬링방 같은게 만들어져도 재밌겠다 싶기도 하고.
두번째로 기억에 남는 건 여자 스피드 스케이트에서 이상화 선수와 고다이라 나오 선수의 경기 직후 모습들. 여자 컬링과는 또 다른 모습의 드라마를 보여주는 두 선수의 우정어린 모습은 이게 교과서와 소년 스포츠물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건강한 라이벌 정신과 올림픽 정신, 국경을 넘은 우정이란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더랬다. 뒷 이야기까지도 훈훈해서 관심을 갖고 기사들을 찾아 읽게 되었는데 다들 훈훈한 미담이라 추운 겨울의 차가운 감성을 녹여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건 남자 매스 스타트에서 이승훈 선수와 정재원 선수의 경기 모습. 이승훈 선수의 승리를 위해 큰 그림을 그리고 개인적인 기록을 포기하고, 큰 그림을 위해 집중한 정재원 선수의 희생 같은 모습과 그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고 멋지게 금메달을 쟁취한 이승훈 선수의 당당한 포효. 젊은 정재원 선수가 이승훈 선수가 걸은 길을 잘 갈 수 있기를 응원하면서 뭔가 다른 형태의 상을 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미 팀추월의 은메달을 통해 아직 몇 년 남은 군입대를 벌써 면제받았다고...
평창 올림픽은 여러가지 이유로 기대치 자체가 없어서 더욱 감탄하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웠던 점을 꼽으라면 폐회식에서 인면조의 등장 타이밍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 한국 전통(...)의 EDM 파티 즈음에 등장해서 아쉬움을 달래주긴 했지만, 5각 기둥 형태의 선물상자가 열리면서 스노우돔이 나올 때 인면조가 그 스노우돔을 감싸고 있다가 꾸에엑 하고 포효했더라면 어땠을까(집어쳐).....
블로그에 뭔가 이렇게 타닥타닥 글을 적게 되면,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열어봤을 때 당시의 감정을 되새겨볼 수 있다는 장점을 기억하며 기대하지 않아서 미안했고 위에 적은 선수들말고 다른 선수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서 미안하고 스포츠가 이렇게 좋구나하는 생각을 들게 해줘서 새삼 고마웠던 우리나라 두번째 올림픽, 평창 올림픽을 기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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