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앵두나무집 총각이여.
적어놓고 보니 엄청 일본 애니메이션 부제스럽다. 뭐 어쨌건.
작년 이맘때쯤 예전 블로그에 비슷한 글을 적었었는데, 어느덧 계절이 한바퀴 둘아 다시 앵두나무 꽃이 피는 계절이 되었다. 이제 또 앵두가 열리는 시기가 돌아올 것이고.
아마도, 이 앵두나무꽃을 보는 일은 이 봄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 본다. 작년에도 거의 같은 심정이었지만, 이번에는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느낌이다. 가는 세월이 아쉬워, 또 다시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나 자신도, 앵두나무도, 은행나무도, 집도 변하지 않았지만 세상은 항상 변하고 있다고들 한다. 나무와 집은 20년전 이 집에 처음 왔을 때와 다름없이 땅에 뿌리를 박고 든든히 서있을 뿐인데. 할 수만 있다면 우리집 부근의 시공을 그대로 박제를 떠서 그 안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부질없는 오타쿠적인 생각을 해 본다. 계절의 흐름에 맞추어 꽃은 피고 지고 열매맺을 뿐인데, 열매가 여러번 맺히면 사람은 변해간다는 상식과 진리가 문득 가슴을 에인다. 한결같이 이파리를 틔우고 꽃을 피우는 가느다란 앵두나무처럼, 그렇게 변치않는 모습으로 나이먹을 수 있다면 정말 좋을텐데...
사진의 꽃들이 모두 지고 그 자리에 붉고 토실한 앵두가 맺히면, 아마도 저 자리에 피어있는 꽃을 다시 보는 날은 찾아오지 않을 것 같다. 앵두나무집 총각이라고 불리던 것을 좋아했던 나도, 꽃이 지고 이 곳을 떠나면 두 번 다시 그렇게 불리울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사람은 모든 것과 만나고 헤어지지만, 나 스스로의 한 이름과 헤어지는 것은 다른 헤어짐도 그렇듯이 서글프기만 하다. 꽃은 그저 꽃으로 피었고, 열매를 맺기 위해 지는 모습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지만 막연한 서글픔을 형태로 투영하고자 하는 초라한 욕심은 그 모습 하나하나에 의미와 아름다움을 부여하고 있다. 그 덕분에 앵두나무집 총각은 웃으며 가야할 때를 알고 떠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일게다. 누가 그렇게 보아주지 않아도, 아직은 앵두나무집 총각인 나는 우물을 들여다보며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조만간 헤어질 앵두나무집 총각이여, 안녕히.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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