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다리도 쉬고 팸플릿과 짐을 효율적으로 정리하고 식사를 하러 갔다. 일본에서 유행하는 CF 대로 "朝はカレーだ"를 외치며 점심식사는 카레로 낙점. 전시장을 빠져나오면서 자외선에 반응하는 도료로 재입장 허가 도장을 받았는데, 이게 얼핏 보면 지워진듯 보이는 투명한 반짝이 도료였지만 실제 자외선 조명을 비춰보니 매우 선명한 보라색이 보여서 감탄했더랬다. 이거 무슨 건덕의 낙인이랄까 피부 건강에 나쁜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서두 어쩌겠나.. 꼬맹이들이 많은 이벤트인데 설마 발암물질은 아니었겠지..
식사와 휴식을 마치고 화장실꺼정 댕겨온 후 다시 재입장!! 자외선 도료의 위력에 감탄하면서 애니메이션 히스토리관을 다시 도전해 볼까 했었지만 아침보다 더 많아진 인파에 포기를 하고 게임 히스토리 부스에 전시되어 있던 건담 관련 게임 소프트들을 둘러보며 추억과 물욕에서 헤엄친 후 SD건담 부스 뒷길을 통해서 (아침에 갔던 길은 이벤트 때문에 병목현상이 심해져 있었다.) 특별 상영물 링 오브 건담을 보러 갔다.
링 오브 건담은 3D CG와 미려한 2D 영상이 결합된 애니메이션이었는데, 건담은 오다이바 건담같은 느낌의 모델링이었지만 적들기체는 꼬리가 달린 새로운 디자인의 기체였다. 일어가 짧은 탓에 아무로 레이가 어쩌고 건담이 어쩌고 무슨 힘인가 유산인가 하는 걸 개방하고 어쩌고 하는, 짧은 영상물이었는데 그래도 부려 토미노 요시유키 옹 작품인데다 30주년 기념 한정 영상이라서 뭔소린지 설정도 잘 모르겠긴 했지만 영상과 음악만 감상했더랬다.
링 오브 건담을 보고 굿즈 코너와 리얼G 부스 등을 조금 돌아보니 슬슬 오다이바 건담을 보러 가도 좋을 시간이 되어 있었다. 애니메이션 히스토리관을 못 본 것이 아쉬움으로 남긴 했지만 이미 받은 뽐뿌와 건덕의 기운으로 입장료 따위는 뽑고도 남은 기분이었기에, 가샤푱 캡슐을 모조리 정리하여 버리고 알맹이만 챙겨 부피를 줄인 후 오다이바 건담이 서 있던 시오카제 공원으로 향했다.
정말로 눈 앞에, 주변의 나무와 천막과 멀리 길건너 보이는 빌딩들 사이로 18미터 짜리 건담이 서 있는 광경은 묘하게 현실감이 없으면서도 현실 그 자체라는 충격이었다. 아침에 빅 엑스포를 가면서 유리카모메의 차창으로 보였던 건담의 상반신을 목격했을때의 충격과는 또 다른, 박력과 현실성, 그리고 무시무시한 인파 속에 섞여서 느낀 감동의 파도를 어떤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있으랴.
유리카모메 역에서 시오카제 공원은 거리가 좀 되었던 탓에 동생과 나는 목이 좀 말랐었지만, 어째 자판기는 전부 품절에 채워놓을 생각을 못 하는 것 같았고 상점들에선 빙수나 맥주, 주스나 사와는 팔아도 정작 마시고 싶은 스포츠 음료나 생수는 팔지 않더라. 결국 조금 더 참아보기로 하고 현장 한정 30주년 HGUC 건담을 판매하는 줄을 서고, 건담을 관람하고 발을 만져본 후 나오는 길에 입구에 막 채워놓은 미지근한 생수를 사 마시고 다리를 쉬었다.
다리를 쉬고 주변을 둘러보며 일본행 최대의 목표였던 오다이바 건담을 실컷 구경하고 즐겨본 감동을 추스르다, 다음날인 월요일의 계획과 남은 일요일 저녁을 고민해 보고, 월요일 저녁이나 화요일 낮(돌아가는 날)에 하려던 쇼핑을 이 날 저녁에 끝내기로 결정했다. 술을 마시거나 늦게까지 노는 건 월요일에 출근해야 하는 동생에게도 민폐이고 어차피 쇼핑할 건덕지도 별로 없기도 했고...(라기엔 건담관련 뽐뿌를 너무 받아버렸었지만;;)
원래는 해가 넘어가는 순간 건담 몸체 각부에 설치된 조명들을 찍어보고 싶었지만 한참을 건담 주위를 서성거리며 구경하고, 건담의 구동기믹을 시연하는 시간을 운 좋게 다 본 덕분에 이젠 뭐 아무래도 좋은 기분이 되었달까. 게다가 일요일 저녁의 오다이바 관광 인파의 지옥을 조금이라도 피하려면 이제는 일어서야만 한다는 판단이 서기도 했고 말이지.
결국 도쿄에 가면 한 번 이상은 반드시 가는 아키하바라의 요도바시에서 몇 가지 세일 상품으로 들어가 있던 프라모델을 구매하고, 빅 엑스포에서 받은 건담워 무한뽐뿌 속에서 헤엄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재고가 얼마 없던 건담워를 보고 실망하여 악기 쪽에서 전자 드럼을 좀 구경하다가 동생의 아파트로 향했다. 샤워를 하고 짐을 정리하고 나니 일요일이 꼬박 저물어, 다음날의 일정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야말로 건담 때문에 결정했던 휴가의 둘째날을 아주 그냥 건담으로 불사르고 만족감을 안고 눈을 감았더랬다. 나이 서른 넘어서 이래도 되나.. 근데 아마 난 마흔 넘어도 이러지 싶은데;;
2009년 8월 일본여행 #4 8월 24일 로 이어짐. 오후 사진을 골라도 100장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