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억 년 전에 출발한 빛인 거잖아...
'몇 억 년 전에 출발한 빛인 거잖아...' (원문:何憶年も前の輝き何だよね=몇 억 년도 전의 빛인거구나)
어린이 회관 천체관에 앉아서 별을 보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은희의 귓가에 나즈막히 속삭여 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뭔 미친 짓거리인가 싶지만, 만 열아홉, 우리 나이로 스무살 시절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 지금은 상상도 못할 어느 여대 모 과와의 단체 미팅에서 삐삐번호를 주고 받은 은희와 몇 번째인가의 데이트였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건대 근처에 있던 어린이 회관에는 천체관이라는게 있어서, 천체 투영기라는 이름의 기계로 어둡고 둥근 천장에 쏘는 밤하늘 별빛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딱히 천문학에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고 별자리라고는 그리스신화에서 읽은 몇 가지 동화 같은 신화의 주인공 몇 가지만 알고 있었지만, 아무튼 이 천체관을 가보고 싶었더랬다.
요즘은 갖고 놀 것도, 시간을 내어 봐야할 것도 너무나 많은 세상이지만 당시에는 케이블TV 가 깔린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낮 시간에 TV를 틀어봐야 화면 조정시간이라는 차가운 느낌의 화면이나 치지직 거리는 신호없는 화면만이 보이던 시절이었다. 인터넷 대신에 PC통신이 있었고, 핸드폰은 커녕 공중전화로 비이퍼... 삐삐에 음성을 남기는 것이 새로운 즐거움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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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통은 국민학교 때 어린이 회관으로 소풍을 가야만 볼 수 있는 정도였던 천체관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천체관 하면 데이트 장소라는 나만의 상식으로 은희에게 슬쩍 건대 쪽에 밤하늘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대... 라고 말을 걸어봤던 것이다. 그리고, 그 천체관에 들어가 가짜 밤하늘을 보다가, 문득 해야할 말을 한다는 듯이 저 말을 꺼낸 것이었다.
다행히, 지나가다 길거리 상인에게 서태지 아가씨라는 호객행위를 들을 정도로 힙합바지를 멋지게 입고 다니던 은희였지만, 문득 눈을 크게 뜨고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라며 씩 웃어 주는 것이었다. 그 말 자체를 좋게 들어준 건지, 풋풋한 데이트에서 나름 느끼한 말을 준비했을 것 같은 어설픈 스무살 청년의 노력이 가상했던 건지, 그 때 그녀의 마음은 그때도 지금도 알 수 없다. 오히려, 그 때는 속으로 '꽤 좋은 인상을 준 것 같아'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고 여길 나가면 건대 앞으로 가서 스파게티를 먹어야 하나, 피자를 먹어야 하나, 지갑에 얼마가 남아있더라 하는 생각 뿐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영덕대게의 삶을 사는 나에게 당연히 저런 느끼한 말은 그냥 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했지만, 코나미의 도키메키 메모리얼에서 데이트 스팟 '플라네타리움'에서 호감도를 올리는 선택지 중 하나였기에 수없는 플레이를 통해 머릿속에 들어있던 말이 자동으로 출력되다시피 했을 것...으로 기억한다. 엊그제 점심식사 메뉴도 기억나지 않는데 그 시절의 내 마음을 어떻게 정확히 기억할까. 아마도 그 당시 내 몸을 구성하던 세포의 절반은 바뀌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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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아내가 선물로 받아온 '인공태양 알람시계'의 작동 설명서를 보다가 플라네타리움의 기억이 생각났다. 그러고보니 올해는 PC엔진판 첫번째 토키메키 메모리얼의 발매일로부터 30주년이다. 플라네타리움이라는 단어는 데이트스팟보다는 '플라스틱 트리'의 히트곡 중 하나로 더 기억에 남아있지만, 여러가지로 게임과 함께 살아온 영덕대게의 삶이었구나,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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