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 색선희준 블로그

'몇 억 년 전에 출발한 빛인 거잖아...' (원문:何憶年も前の輝き何だよね=몇 억 년도 전의 빛인거구나)

어린이 회관 천체관에 앉아서 별을 보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은희의 귓가에 나즈막히 속삭여 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뭔 미친 짓거리인가 싶지만, 만 열아홉, 우리 나이로 스무살 시절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 지금은 상상도 못할 어느 여대 모 과와의 단체 미팅에서 삐삐번호를 주고 받은 은희와  몇 번째인가의 데이트였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건대 근처에 있던 어린이 회관에는 천체관이라는게 있어서, 천체 투영기라는 이름의 기계로 어둡고 둥근 천장에 쏘는 밤하늘 별빛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딱히 천문학에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고 별자리라고는 그리스신화에서 읽은 몇 가지 동화 같은 신화의 주인공 몇 가지만 알고 있었지만, 아무튼 이 천체관을 가보고 싶었더랬다.

요즘은 갖고 놀 것도, 시간을 내어 봐야할 것도 너무나 많은 세상이지만 당시에는 케이블TV 가 깔린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낮 시간에 TV를 틀어봐야 화면 조정시간이라는 차가운 느낌의 화면이나 치지직 거리는 신호없는 화면만이 보이던 시절이었다. 인터넷 대신에 PC통신이 있었고, 핸드폰은 커녕 공중전화로 비이퍼... 삐삐에 음성을 남기는 것이 새로운 즐거움던 시절이었다. 

몇 억 년 전에 출발한 빛인 거잖아
유미쨩은 그냥 그런 반응

그러다, 보통은 국민학교 때 어린이 회관으로 소풍을 가야만 볼 수 있는 정도였던 천체관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천체관 하면 데이트 장소라는 나만의 상식으로 은희에게 슬쩍 건대 쪽에 밤하늘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대... 라고 말을 걸어봤던 것이다. 그리고, 그 천체관에 들어가 가짜 밤하늘을 보다가, 문득 해야할 말을 한다는 듯이 저 말을 꺼낸 것이었다. 

다행히, 지나가다 길거리 상인에게 서태지 아가씨라는 호객행위를 들을 정도로 힙합바지를 멋지게 입고 다니던 은희였지만, 문득 눈을 크게 뜨고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라며 씩 웃어 주는 것이었다. 그 말 자체를 좋게 들어준 건지, 풋풋한 데이트에서 나름 느끼한 말을 준비했을 것 같은 어설픈 스무살 청년의 노력이 가상했던 건지, 그 때 그녀의 마음은 그때도 지금도 알 수 없다. 오히려, 그 때는 속으로 '꽤 좋은 인상을 준 것 같아'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고 여길 나가면 건대 앞으로 가서 스파게티를 먹어야 하나, 피자를 먹어야 하나, 지갑에 얼마가 남아있더라 하는 생각 뿐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영덕대게의 삶을 사는 나에게 당연히 저런 느끼한 말은 그냥 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했지만, 코나미의 도키메키 메모리얼에서 데이트 스팟 '플라네타리움'에서 호감도를 올리는 선택지 중 하나였기에 수없는 플레이를 통해 머릿속에 들어있던 말이 자동으로 출력되다시피 했을 것...으로 기억한다. 엊그제 점심식사 메뉴도 기억나지 않는데 그 시절의 내 마음을 어떻게 정확히 기억할까. 아마도 그 당시 내 몸을 구성하던 세포의 절반은 바뀌었을텐데.

어린이회관과는 사뭇 다른 반짝시
기사라기 상은 좋아했는데

문득, 아내가 선물로 받아온 '인공태양 알람시계'의 작동 설명서를 보다가 플라네타리움의 기억이 생각났다. 그러고보니 올해는 PC엔진판 첫번째 토키메키 메모리얼의 발매일로부터 30주년이다. 플라네타리움이라는 단어는 데이트스팟보다는 '플라스틱 트리'의 히트곡 중 하나로 더 기억에 남아있지만, 여러가지로 게임과 함께 살아온 영덕대게의 삶이었구나,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