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는 게임샵을 위하여
이야기/런치타임블루스2011. 4. 14. 12:52
사춘기. 봄春을 생각思하는 때期 라는 뜻이다. 여러분의 사춘기는, 그 시절의 봄은 무엇이었는지?
많은 영덕대게들이 그러하듯, 내게 있어 사춘기의 봄은 여자보다는 전자오락이었다. 딱히 남고를 다녔기 때문이라기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여자'라는 존재가 내겐 너무 먼 존재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로 즐길 수 있는 컨텐츠가 너무나 많아졌지만, 당시에는 작은 아르바이트와 용돈을 모아 오덕질을 즐기던 소년이었던지라 용돈과 정신력의 대부분을 전자오락에 집중하고 살았더랬다. 달리 선택지도 없었고. 1990년 후반, 국민학교 6학년이라는 늦은 나이에 전자오락에 눈을 떠 인생을 요모양 요꼴로 조지고 있는 지금까지도 전자오락은 나의 취미생활=덕질의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언젠가, 누가 읽어주지 않더라도 나만의 만족을 위해 내가 살아온 오락이야기를 써볼까 하지만 그건 뭐 어찌될지 모르는 것이고...
오락실에서 다크실과 보난자 브라더스의 인기가 식어갈 무렵... 중딩이 되고 난 다음에 내 인생을 깨부순 원흉 1호 쯤 되는 스트리트 파이터2가 오락실을 점령한 그 즈음... 사촌동생 eihabu가 지른 패밀리를 보고 용돈을 모아 훼밀리 오락기를 장만하고 한참 지났을 때였다. 오락실을 끊지는 못했지만 이용 요금을 줄여가며 용돈을 모아 조금씩 훼밀리용 팩을 늘려가며 덕질에 눈을 떠 가던 그 시절.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종로3가 세운상가와 많이 변모한 용산 전자상가의 게임샵을 차비와 정력을 낭비해가며 돈을 아껴보겠다고 왔다갔다하던 때에 eihabu가 준 정보가 있었으니 학교 다녀 오는 길에도 들를 수 있는 갈현동 어느 곳에 용산이나 세운상가보다 훨씬 좋은 게임샵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렇게, 갈현동 월드게임을 알고 죽돌이 생활이 시작되었더랬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가 되어가지만.. 불광동 제일프라자와 갈현동 월드게임은 90년대 중~후반에 걸쳐 가정용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나름대로 유명한 이름이었다. 규모에 힘입은 박리다매와 별별 희안한 것들이 많았던 제일프라자의 가격적인 메리트는 강북 끄트머리에 있는 불광동으로 경기도 남쪽 사람들까지 찾아오게 만드는 힘이 있었고, 신용있는 독자적인 공급 루트를 가지고 있던 월드게임은 꽤 많은 고정 고객을 거느리고 다양한 품목을 공급했더랬다. 나는 갈현동 월드게임을 거의 매일 지나다니며 많은 게임을 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더랬다. 훼밀리와 수퍼패미콤을 거쳐 PS1에 걸쳐 그 곳에서 즐기고 만난 게임들의 숫자는 내 게임라이프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은 온라인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그 대신 오프라인 게임샵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어렵게 된 정도가 아니라 몇몇 밀집지역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유니크한 업종이 되어버렸달까. 온라인 대신 오프라인에서 정보를 교환하고 많은 게임들을 구경하고 만져보며 오덕한 인간관계를 늘려나가던 당시의 어린 영덕대게였던 나에겐 오히려 다른 취미에 눈 돌리지 않고 전자오락에 집중하게 해 준 고마운 매장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찌질하고 부끄럽고 쪼잔한 방황기를 덕심으로 대동단결하게 해 준..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난 몇 명의 선후배들은 지금도 연락하고 만나며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인연이겠지. 그래서, 나는 전자오락을, 나의 오덕질이라는 취미를, 그렇게 만난 사람들을, 그리고 지금은 컴퓨터 가게가 되어버린 그 가게를 추억하고 감사하며 산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저씨,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무척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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