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다
이야기/런치타임블루스2011. 4. 6. 12:56
아침 출근길에, 캐틱스 오그레를 하다가 문득 옆에 서있는 스타일리시한 총각을 보니 손에 책을 들고 읽고 있던데, 그 제목이 저 '아프니까 청춘이다' 였다. 그리고 출근 후에 화장실에 홀로 앉아 인륜지대사를 치르며 트위터를 보자니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명제를 맹비난하는 트윗이 타임라인에 올라와 있는게 눈에 띄었다.
그 맹비난하는 트윗은 '자기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고 '자기자신을 온전히 찾고 인정하지 못 하게' 한 무언가에 대한 분노의 표출로 보였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명제가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모임을 전전하다보니, 이따금 마땅히 치렀어야 할 아픔을 건너뛰고 청춘을 마감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남들보다 더 한 아픔을 견디며 청춘을 보내는 사람들도 만나게 되고, 위에 언급한 것과 비슷한 분노를 느끼는 사람도 만나게 된다. 어찌보면 늙었고 어찌보면 아직은 젊은 것도 같은 내 입장에 보면... 아프니까 청춘이고, 아파보지 않았으면 청춘이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청춘. 촌스러운 어감이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 한 구석을 벅차오르게도 하고 씁쓸하게도 하며 미소와 눈물을 동시에 짓게 만드는 단어이다. 또, 그런 시기이다. 한자 그대로 풀어서 꼭 맞는 나이만을 떠올릴게 아니라, 때 이른 청춘, 뒤 늦은 청춘도 충분히 있게 마련인데, 내가 생각하기에 청춘이란 '개념을 찾는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위에 언급한 트윗의 분노는 온전히 정당하다고 하겠다.
보통 청춘이라고 하면 남녀상열지사를 떠올리게 되는 경우가 많을거라 생각하는데, 그 과정에서 찾는 개념이라는게 실로 무시무시하다. 가장 작으면서도 온갖 난관이 기다리는 단위의 사회가 바로 남녀관계이기 때문에. 온전히 두사람에게만 집중해야 함에도 그러기 위해서 다른 곳에 눈을 돌려 성실함을 채워나가지 않으면 안되고, 그렇게 맺게 되는 많은 관계와 사회 생활 속에서 사람은 처세와 개념을 잡아가는 법이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닫힌 사고방식으로 인해 이 시기에 이제까지 멋대로 키워온 나만의 개념과 사회의 개념이 충돌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아픔을 오롯이 견뎌내어 성장하지 못한 사람들은 먼 훗날 그 댓가를 혹독히 치르게 마련이다. 조만간 개봉하는 영화의 원작인 무라카미 하루키 선생의 '노르웨이의 숲'도 그런 설정을 안고 출발하기도 하고.
아직까지, 내가 생각하기엔 아프니까 청춘이고, 아파야만 청춘이다. 그 아픔을 어떤 방법을 통해서건 치료하고 견뎌내어 강해지지 않으면, 청춘은 커녕 추억 또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만든 추억과 보낸 청춘이 있다면, 그 깊이는 실로 낮을 것이고 그 사람의 강인함과 개념의 크기 또한 기대할만한 가치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아플 일이 있으면 피하지 말고 부딪혀 아파 봐야 한다. 인간은 똑똑해 보이지만 실로 아둔한 동물이라, 직접 겪어보지 못한 아픔을 간접적으로만 알아서는 그 아픔을 주제로 한 대화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그 대화를 기본으로 한 예술을 이해할 수 없고, 삶의 질과 인간으로서의 개념 또한 낮고 좁을 수 밖에 없다.
....가끔은 너무 아파서 망가지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런 소수의 경우가 되지 않으리라는 확률적인 믿음과 함께 아플 일이 있고 그 아픔을 감수할만한 훗날이 보인다면 과감하게 아파보자. 아무리 아파봐야 죽기밖에 더하겠는가. ...라곤 해도 난 죽기 싫은데..으음... 일단 저 책을 사서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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