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으로 따지면 2년이 되지 않지만, 햇수로 어느덧 3년째 즐기고 있는 서바이벌 게임. 이걸 시작하고 나서 난생처음 복합골절도 당해보고, 이런저런 지출도 늘고 모임의 총무자리도 꿰차보고, 여러가지 경험을 하고 있다. 특히나 작년 9월 부상 이후 오랫동안 공백을 가져서인지 2월에 참가했던 3번의 게임이 모두 미치도록 재미있었고, 덕분에좀 더 서바이벌 게임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직 대외적으로 볼 때 역량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작은 부분에서 많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우리팀 멤버들을 보아도 그렇다. 2월의 마지막 게임이었던 어제 게임을 뛰고 나서 몇가지 감상이 남아, 팀 게시판에 적으려다가 블로그에 적어본다. 굳이 부제를 달자면 [서바이벌 게임에서 찾아낸 진취적인 삶의 자세를 취하는 법에 대한 감상 섞인 분석을 하고자 하는 욕심에 적어내려가다가 고찰이 될 뻔한 아쉬움을 시간적 인과관계에 따라 서술하지 못한 이야기] 정도 되겠다.
어제 서바이벌 게임에서 느꼈던 것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 하나는 [과감한 돌격]. 나는 케로로에서도 기로로를 좋아하고, 파이널 파이트 류의 난투게임에서도 좀 무리다 싶은 곳에 뛰어들어 오버하다가 죽는 일이 허다한... 말하자면 불빛에 뛰어드는 여름밤 부나비같은 성격이다. 유식한 말로는 지랄맞다고도 한다. 일본에 처음 여행갔을 때는 교토의 나이지긋하신 아저씨에게서 아바렌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을 만큼 혼자 분위기도 잘탄다. 언제나처럼 서설이 길지만, 요약하면 서바이벌 게임에서도 날뛰며 돌격하다 죽는 스타일이라는 뜻이다. 나는 전선이 교착되는게 싫다. 적당한 엄폐물을 각자 차지하고 총기의 사거리만큼 벌어져서 견제사격을 반복하는 상황이 너무나 싫다. 그런 상황에서는 언제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떻게든 우회로 혹은 뒷길을 찾으려 노력한다. 어렵다 싶은 루트에 무모하게 도전하다 죽기도 하고, 때로는 그게 제대로 적중해서 적진의 뒤를 급습하여 일망타진하기도 한다. 도전하다 죽게 되면 아쉽긴 하지만 허무함은 적고, 작전이 성공하게 되면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정작 큰일에는 소심하면서도, 이것도 결국 게임이라 그런지 잘도 무모해진다.
그런데 어제는 그게 조금 달랐다. 여전히 무모하게 뛰어들긴 했지만, 얼핏 사용하기 어려울 듯한 나무밑둥이라는 엄폐물을 신속한 기동과 포복의 반복으로 전진해가며 우회에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설명이 어렵지만, 시야를 차단해 주는 숲속을 크게 돌아서 유유히 우회하는 것과 빗발치는 탄막의 빈틈을 노려 지척의 나무밑둥을 반복적으로 기동해 가는 것은 마음의 각오와 성공률의 차원이 다르다. 결국 우회는 성공했지만 판단 미스로 사살당하는 결과를 맞이했지만, 얼핏 불가능해 보이기만 한 벌판을 돌파할 수 있었다는 것은 단순한 자신감 획득 이상의 것이었다. 또한 팀의 다른 동료가 보여준 신속하고 과감한 돌격의 효율은 지루한 교착을 뚫어줄 수 있는 하나의 카드가 되어 준다는 것도 새삼 확인할 수 있었고.
저돌적인 돌격병은 생명보험이 싫어하겠지만, 그 리스크가 큰 만큼 얻을 수 있는 것도 많다. 흔히들 리스크가 크면 많이 가져갈 수 있다고 말들은 잘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체험할 기회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체험을 다른 형태로 가져볼 수 있었던 것은, 지난 2년간 별로 느끼지 못하다가 강하게 자각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큰 소득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제 느낀 또 하나의 느낌은 [끈기있는 기다림]. 위의 과감한 돌격과 정반대의 말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서바이벌 게임에서는 이 또한 중요한 요소이다. 과감한 돌격을 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돌격로, 적들의 위치, 탄도를 피할 수 있는 타이밍과 각도, 이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신속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적어놓으니 내가 무슨 프로페셔널한 용병 같지만, 저 말들을 우리 삶의 다른 상황에 대입하고 다른 말들로 치환한다면 흔히들 말하는 상식적인 말이 될 것이다. 저 모든 것들을 판단하고, 신속하고 과감한 돌격을 속행해야 할 수도 있겠지만, 끈기있게 적들의 움직임이 무거워지고 아군의 상황을 파악하여 불러들이기 위해 지루하면서도 아슬아슬한 위치 유지를 해야만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지루함과 기다림 속의 아슬아슬함이 너무너무 싫지만, 이걸 참지 못하고 무작정 움직이려다가 어이없는 전사를 당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내겐 끈기와 참을성이 아직도 부족하는 것이다.
그저 한 자리만을 지키고 탄을 흩뿌리는 것만이 끈기있는 기다림이 아니다. 상황을 파악하고, 발밑과 정면만이 아닌 뒤통수와 좌우를 살피며 변해가는 전황을 관찰하고 판단해내며, 스스로의 불리한 위치가 역전될 가능성을 점치고 확신이 섰을 때 지루하고 괴로운 시간이지만 지켜나가는 것. 내가 말하는 끈기있는 기다림은 그런 것이다. 나의 부족한 인내와 참을성은 어제오늘일이 아니라고 늘 생각하지만, 어제는 정말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조금 더 주위를 바라보고 관찰했더라면, 조금만 더 그 위치를 고수하고 기다리며 역전의 발판을 다지고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은 게임이 있었기 때문에. 역시 그런 것을 강하게 자각할 수 있었던 것이 어제의 게임이었다.
여기 오시는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나는 게임을 무척 좋아한다. 한때는 인생을 걸고 싶다고도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 애정과 투자하는 시간이 아무래도 줄었지만, 여전히 좋아하고 즐기며 평생을 가져갈 취미라고 생각한다. 그 속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기 때문에. 평범한 일상에서는 맛 볼 수 없는 어떠한 자각이 있기 때문에. 그런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난 비디오 게임을 사랑하고, 서바이벌 게임도 사랑한다. 오늘 아침에는 허벅지가 별로 댕기지 않는 것을 보니, 몸이 슬슬 서바이벌에 적응하는 것 같다. 어제 덜 구른 탓일 수도 있겠지만.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서바이벌 게임을 체험해 보고 싶으신 분은 연락주시라. 우후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