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그 개운치 않은 범죄
처칠 아저씨였던가, 암튼 2차대전 나치 독일을 조지는데 큰 공헌을 했던 양반은, 우유와 낮잠을 찬양했다고 한다. ...아닌가? 암튼,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낮잠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되겠다.
학창시절까지, 나는 낮잠을 잘 못자는 편이었다. 제법 피곤한 상태에서도 해가 쨍쨍 뜬 대낮에는 눈을 감아도 잘 잠들지 못하는 편이었다. 체질이었을까, 성질탓이었을까. 아무튼 낮잠을 자려고 누웠다가도 뒤척이다가 다시 일어나서 만화책이든 게임기든 붙잡고 뭔가를 다시 시작하곤 했다. 고등학교 3년 동안에도 낮잠이라고는 언젠가 모의고사 언어영역 시간에 1시간 가량 남은 시간동안 딱 한번 잠들었던 적이 있을 뿐. 반 전체가 학살당한 듯 잠들었던 시간속에서도 문제집이든 게임잡지든 뭔가 보고 있거나 했지, 낮잠은 도무지 자본 적이 없다.
그러던 낮잠을, 취직하고 난 다음부터는 매우 잘 자게 되었다. 직장생활도 만 3년을 지나 4년차(입사 햇수로는 5년)에 접어들지만, 처음부터 격주 5일제를 실시하고 있던 덕분에 토요일에 집에서 빈둥거리는 날에는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낮잠을 자곤 했었다. 대체로 점심을 먹고 뭔가 게임을 하다가 2시 경에 잠들어 5시 넘어 깨는. 누군가가 눈꺼풀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으로 머리가 잘 돌지 않아 시험삼아 머리와 등을 기대보면 빨대를 타고 올라오는 콜라처럼 잠이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이었다. 처음 얼마간은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사회 초년생이 받는 스트레스겠거니... 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곤 했으니. 확실히 그 낮잠은 달콤했고, 거의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낮잠을 쉽게 든다는 것도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였을까. 낮잠은 내 인생에 있어 죄악이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낮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고 적어놓긴 했지만, 그만큼 밤잠은 집중해서 자는 편이다. 고3때도 하루 6시간 이상은 꼬박꼬박 푹 자주었으니까. 몇명은 알겠지만, 친구들과 놀다가도 어느 시간쯤이 지나면 약먹은 병아리마냥 정신을 잃었다들었다 하다가, 어느순간부터는 코를 골고 이를 가니까. 게다가 제법 자주 잠꼬대도 무섭게 한다지. ...아무튼, 이렇게 밤잠을 충실히 자고 있으면서 낮잠까지 챙긴다는 것은 아무래도 그리 길 것 같지 않은 내 인생에 있어 무지막지한 손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뭘 얼마나 열심히 살았다고 낮잠까지 챙긴단 말인가. 나는 그럴 정도로 인생의 승리자도 아니며, 부자도 아니다. 하다못해 질러놓다 못해 탑을 지나 성이 되고 있는 건프라 박스를 하나라도 줄이고, 클리어 못한 게임을 조금이라도 플레이하고, 언제나 아쉬운 사람들에게 안부문자라도 한 통 더 돌릴 시간으로 활용해야할 그 귀중한 시간을 낮잠으로 허비하다니. 빠삐용이라는 영화에 나온 것처럼, 나는 낮잠을 잠으로써 내 인생을 낭비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분명 그렇다.
....결국 그 죄값은 낮잠에서 깰 때의 더부룩한 속과 무겁다 못해 어지러운 머리로 어느정도 받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애초에 그런 죄값을 받지 않도록 기초체력을 기르고 산소를 뇌에 공급하고 건강한 식사를 해야 할 것이다. 말로만 하지 말고, 조금 더 열심히 살아봐야지. 언제나 시간이 없다고 툴툴거리는 것은 남이 아닌 내가 아니던가. 내일은, 다음 언젠가의 한가한 토요일에는, 나이트메어를 타고 올 낮잠을 요령있게 피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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