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누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상 참 좋아졌다는 말과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 좋아진 세상이란 때로는 하이 테크놀로지일 수도 있고, 과거에 귀하던 것들이 흔해진 것일 수도 있고, 그 말을 하는 본인의 수준이 올라갔기에 세상이 좋아져 보이는 것일 수도 있고, 또 기타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강렬한 추억을 만나게 되면 이성이 날아가거나 충동에 사로잡히거나 (같은 말인가?)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그런 경우가 좀 많은 것 같은 느낌이긴 하지만... 아무튼.


각 4권의 표지

각 4권의 등짝

책날개의 리스트들

이 책은 Z건담과 쌍제트(ZZ)건담이 성심당 딱다구리 문고1987년에, 뉴 건담이 다이니믹 프로에서 1988년에 나온 책들이다. 내 경우에는 이 책들을 국민학교 시절에 친구가 갖고 있던 걸 빌려서 읽었는데, 이런 책들을 읽음으로서 프라모델 설명서와 박스에 단편적으로 적혀있던 이야기들을 머릿속에서 이어붙여가면서 건담이라는 컨텐츠를 나의 것으로 해 나갔던 것 같다. 지금 봐도 멋진 저 임팩트 넘치는 일러스트들과 어렵지만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굉장해 보이는 이야기와 설정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고.

이 서적들은 모두 저작권 따위는 사뿐히 즈려밟으며 책을 만들던 시절에 나온, 말하자면 해적판인데다 일본어를 번역해 놓은 수준도 대충 무슨 내용인지 알아먹을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고 서브컬쳐에서 굉장히 중요한 고유명사들도 제각각인지라 지금 보면 실소가 나오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래서 지금도 시로코의 최종 탑승기이자 Z건담의 최종보스인 [팝티머스 시로코의 MS THE O(디 오)]를 [빠뿌테마스 시록코의 기동전사(혹은 모빌슈쓰) 지오] 로 먼저 떠올리게 되거나, 샤아의 역습 초반에 아무로가 탑승했선 Re GZ (요즘은 리 가지나 리 가즈이 로 많이 읽는 듯)를 리-카즈 로 먼저 떠올리게 되거나, Z건담 중간에 등장한 비극적인 강화인간 포(또는 포우)를 [후오우]로 먼저 떠올린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지만... 그걸 꼭 원죄라고 비판적으로만 말하기엔 1980년대라는 세월에 서브컬쳐에 빠지고 싶은 소년들에겐 자료가 이것들 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이 책들은 80년대 후반, 개인적으로 국민학교 고학년이던 시절 친구가 갖고 있던 걸로 열심히 읽었었는데, 제본 방식 탓에 앞의 컬러인쇄 페이지들이 금방 너덜너덜하게 떨어져 나가곤 했었다. 그 페이지에 멋진 그림이 그려져 있으면 그대로 사라지기도 했던 그런 시절이었는데, 이번에 구하게 된 이 책들은 놀랍게도 세월의 흔적은 있을지라도 낙장이 하나도 없는 좋은 보존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양도해 주신 분도 30년 넘게 소중히 간직하셨다고 하셨는데... 내가 그만큼 잘 보존해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면서 30년 전의 추억을 다시 이렇게 만나본 감동이 커서 섣불리 잘 보관하겠다는 다짐을 해 보는 것이었다... 그 때 당시에 나에게 여러 선진문물을 전해줬던, 지금은 사라진 경기도 고양시 ㅅㅇ국민학교 출신 모군... 잘 살고 있겠지? 여러모로 정말 고마웠다고... 문득 생각이 나네.

Comment +2

  • eihabu 2021.08.12 11:53

    상태가 정말 좋아서..복각판인가 했는데
    ㅎㄷㄷ 하네
    이런 득템이 있기에 당근을 끊을수 없는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