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 색선희준 블로그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우주빔커터. 당시에는 우주빔캇터라는 발음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드래곤볼로 대표되는 서유기를 모티브로 한 일본산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80년대 대한민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구가했던 별나라 손오공(원제는 스타징가였던가...) 에서 주인공 손오공이 사용하던 여의봉같은 무기가 저거였던 것 같다. 우주빔커터.  무기 이름이 아니라 필살기였던가.. 아무튼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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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부타 작은 철공소를 경영하시면서 생계를 꾸려오신 아버지가 가지셨던 소망 중에는 나와 동생이 험한일을 하지 않고 책상앞에 앉아서 일하는 것도 있으셨다고 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와 동생은 책상 앞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나름 그 소망은 이루어진게 아닐까 싶다. 평생 직장 개념이 없는 요즘 세상에서는 과연 이게 평생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긴 하지만 사람은 눈에 보이고 밟을 수 있는 현재를 살아가는 거 아닙니까?
 
 말 그대로 사무직이다보니, 저 흔하디 흔한 커터로 하루에도 수십장의 종이를 칼질하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부터는 커팅매트라는 것을 책상 바닥에 깔아서 칼날의 수명도 늘리고 종이도 편리하게 자르고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커터 칼날 하나를 온전하게 다 쓰는 일도 자주 보기는 어려운 일 중 하나였는데, 이번에 그 기념비적인 현장을 맞아하게 되었다..라는 이야기 되겠다.

 우리가 주변에 소비하는 물건 중에 온전하게 제 수명을 다 하도록 사용하는게 얼마나 될까. 사람은 장난질을 좋아하고 지적 유희를 즐기는 짐승인지라, 지정된 용도 이외에 무언가를 사용하여 제 수명을 깎아먹고 다치고 하는 경우가 참 많다. 모든 것은 주어진 이치대로, 순리대로, 원리원칙대로 처리해 나가면 별 문제 없이 다 마칠 수 있을 텐데, 욕심인지 정인지 성질머리일지 모를 방법으로 일을 망치고 타인을 화나게 하고 고향을 갈아엎고 사기꾼이 표결에서 이기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저 제 용도대로, 순리대로, 이치대로, 정정당당하게, 거짓없이, 가열차게, 있는 그대로, 떳떳하게 나서고 말하고 행동하면 아무 문제없이 모두가 행복할 것을.

 기묘한 맛의 오징어 젓갈이 인상적이었던 백반을 먹고 와서, 마침 다 떨어진 칼날을 보고 나니 손오공이 스타크로를 타고 와서 우주빔커터로 좀 잘라내 주었으면 하는 소식과 뉴스와 전언들이 보여서 잘 먹은 속이 불편해지는 느낌이 들더라. 누구와 무엇을 위해 희생되었는지 모를 분들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