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 색선희준 블로그

아마도 소년중앙으로 기억한다. 아카데미과학교제사에서 최신 조립식 장난감 '뉴칸담 핀판넬'이라는 로보트가 나오는 광고를 본 것은. 80년대에 유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한 번 씩은 봤을 '미니백과' 류의 어디서 왔는지 모를 만화영화 분석집(?)과 죨리게임시리이즈 같은 보드게임, 그리고 100원짜리 인형뽑기(해적판 가샤퐁)와 이런저런 딱지 등을 통해서 알고 있던 '기동전사 건담'=간담=칸담=간탐로봇... 그 '칸담'의 최신작 '뉴칸담'이라는 것이 나온다는 광고를 봤던 것이었다.

 

당시 아마 1천원 아니면 1천5백원이라는 고가의 장난감인데다 경기도 어느 촌구석 동네 문방구에 물량이 많이 들어오지도 않았던 그 장난감의 세련된 생김새는 국민학생이던 내 마음에 그대로 날아와 박혔더랬다. 그리고 무언가의 이벤트가 있어서 받은 용돈은 곧 그 '뉴칸담'이 되었더랬다. 노란 폴리캡과 핑크색/탁한파란색으로 구성된 사출색은 요즘의 건프라와는 비교할 것이 못되었지만, 반다이의 금형을 최대한 가깝게 카피했던 '아카데미과학교제사'의 '뉴칸담'은 조립성도 좋았고 완성했을 때의 자태나 그때까지 칸담들의 가동률이나 견고함 등과 차원을 달리하는 멋진 고품질의 장난감이었다.

 

세월이 조금 흘러, 중학교 3년 동안 입었던 교복이 닳고 달아 더 이상 입어주기 힘들어졌을 무렵 연합고사라는 것을 치러 그럭저럭 인문계 고등하교를 갈 자격을 획득한 후 날백수처럼 무의미하게 학교에 등교했던 어느날, 무심코 틀어본 실내조회용 TV에서 그 '뉴칸담'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어떤 경로로 NHK가 연결되어 TV에서 볼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극의 후반부를 반 친구 몇 명과 둘러앉아 알아듣지도 못하는 일본어 대사와 사운드 이펙트, BGM에 홀려 아마도 거의 생애 처음으로 '기동전사 건담'의 애니메이션을 봤던 것 같다. 그 충격이 아마도, 지금도 가장 사랑하는 MS를 고르라면 높은 순위에 '뉴건담'이 위치하는 까닭일 것이다.

 

'기동전사 건담~샤아의 역습'은 이제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 불리워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세월이 흘러도 세련된 디자인의 기체들과 전기 우주세기를 관통하는 '아무로와 샤아'의 이야기의 마무리는 언제 다시 보아도 그대로 앉아서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마치 OCN에서 '쇼생크탈출'이나 '타짜 1편'을 하는 걸 발견하면 그대로 앉은뱅이가 되는 것처럼. 다만, 뒤늦게 '건담'에 관심이 생긴 사람들이라면 1988년도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작화라는 것을 감안해야 하고 '아무로와 샤아'가 왜 저렇게 의자타고 우주를 날아다니며 죽일 듯이 싸워대는지 그 배경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이 작품을 즐기기 위한 입문 난이도는 요즘 세상의 '어벤져스'시리즈와 비슷하지 않을까.

1회차 관람 완료. 3회차는 가보고 싶은데.

사실 건담인포에 처음 풀렸을 때도 경건한 마음으로 보았고, 거슬러 올라가면 블루레이로, DVD로, 비디오CD로, 자막있는 VHS로, 자막없는 VHS로... 그렇게 기회가 닿을 때마다 봤던 작품이지만, 극장에 앉아서 정식으로 극장판을 관람한 것은 이번이 생애 처음이었다. 좋아하는 작품인 만큼 기대를 안고 봤고, 약간의 오역이 아쉽긴 했지만 준수하고 깔끔한 자막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1988년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작화의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지만, 또 일부 장면들은 극장판 애니메이션 다운 작화를 극장의 큰 화면에서 즐길 수 있어서 또 좋았다. 무엇보다, 사운드바를 들이고 홈시어터를 구축해도 흉내낼 수 없는 극장의 사운드를 통해 지금까지 족히 15번은 정주행했을 작품의 감정을 새로이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은 감동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더 있지만, 마음같아서는 3회차까지 가보고 싶은 본작인지라, 감상을 조금 더 명확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2회차 이후에.. 또는 언젠가 또 먼훗날에 후기를 적어보기로 하고 일단 여기까지만. 끝으로, 마냥 못된 계집애였던 퀘스 파라야가 문득 불쌍하고 가엾은 금쪽이로 다시 생각하게 된 점은.. 역시 내가 나이를 먹어서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