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 색선희준 블로그

가슴 한 구석이 불안한 느낌.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은, 꽉 차 있는 것이 당연한 자리에 무언가가 빠져버린 느낌. 그 답답한 느낌. 어떻게든 그것을 채워 넣어야만 할 것 같은 그 조급한 느낌. 없던 것을 가지고 싶은 아쉬움이 아니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어떤 것에 애태우는 그 빈 느낌. 나는 그렇게 오늘도 무언가를 상실해 간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다른 면모를 만나며 그 모습들을 눈 속에 새기고 머릿속에 새기며 무언가를 채워가지만, 채움에 정신이 팔려 잊어버린 무언가를 나는 오늘도 길거리에 흩뿌려 간다. 사람이 곁에 있고 사람이 가까이에 있어도 그 사람이 변해가고 내가 변해감에 따라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린다. 무언가를 잃어간다. 상실해 간다.

확실히... 여성의 정신연령은 높은 것 같다. 가즈키도 와타나베도 없는 나오코가 노르웨이의 숲 속에서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도 가즈키도 와타나베도 될 수 없는 소년들은 나오코를 미도리라고 생각하며 머릿속의 망상을 현실속에서 껄떡거려갈 뿐. 나 역시 그렇게 되지 못한 소년이었기에 나는 많은 것을 잃어왔다. 하지만, 내가 잃은 것보다 저 나오코들이 잃어버린 것이 더 클거라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과연 그녀들의 상실감을 온전에 가까운 부족함으로 채워줄 수 있는 남자들은 세계의 끝이나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는 존재할까. 와타나베도, 나기사와도, 태엽감는 새도 그렇지 못하였는데.

나는 어쩔 수 없는 하루키빠다.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와타나베의 흉내를 낼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쥰페이같은 전향적인 자세로 신의 아이가 되어 춤이라도 추어야 겠다는 생각만은 끊임없이 하게 된다. 결국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하루키 월드의 주인공인 청춘 3부작의 '나' 처럼, 조심스레 스탭을 밟아나갈 수 밖에. 다만, 그 스텝 끝에서 나만의 유미요시를 만나고 싶다는 소망은 잊지 않고. 그러다 보면, 더 이상 상실하지 않고 조금씩 채워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문제는, 이 생각을 하기 시작한지가 10년쯤 되었다는 것. 10년 세월 속에 내가 만났던 나오코들이, 지금쯤은 그 깊은 상실에서 벗어나 있기를, 그리고 지금 스스로를 나오코라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당신이 얼마나 미도리에 가까운지를 알아주기를. 그대가 나오코라면, 어딘가에 쥐도 있을테니까. 더 이상, 상실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 누구보다도, 내가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