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날인 8월 15일, 광복절. 여름휴가 일정을 맞추려다보니 이렇게 되긴 했지만, 2007년 여름 여행은 동생이 있는 도쿄로 하필 광복절에 출발하게 되었다. 이렇게 적고는 있지만 사실 별 생각없이 일정이 잡혀버린게 사실이기도 하지만. 원래 전날인 14일에는 좀 일찍 들어와서 짐도 싸고 준비도 좀 하고 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다보니 무지막지 집에 늦게 들어와 버렸더랬다. 결국 15일 아침에는 평소 출근하던 시간에 일어나서 대강 옷가지와 짐을 꾸려서 비교적 부랴부랴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더랬다. 그러고보니 작년에 오사카 가던 날도 퇴근해서 집으로 러시한 후 긴급히 짐을 꾸려 다시 광화문으로 나갔더랬지...
6월 하순 이후 계속되고 있는 잔뜩 흐린 하늘을 올려다 보며 우산도 하나 챙기고는, 부모님께 하직인사를 하고 김포공항으로 출발했다. 지하철로 가려면 무척 긴 길이지만, 벽제에서 85번 좌석버스를 타면 비교적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서야 개념을 잡았지만, 인천-나리타 라는 깨끗하고 거대한 공항을 이용하면 시간과 돈도 럭셔리하게 깨지는 반면 김포-하네다 노선을 이용하면 옆집 동네공항 같은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와 함께 시간절약도 할 수 있더라. 언젠가 누군가가 외국 나갔다 와보면 김포공항이 얼마나 작고 꾀죄죄한가 알 수 있다고 했었는데, 어차피 여행의 관문 역할인 공항이 좀 작고 꾀죄죄하면 어떠랴. 가깝고 빠르면 좋은 거지.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허접한 공항도 아니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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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도착도 빨랐고 발권과 수속에도 거의 시간이 걸리지 않아 시간이 왕창 남았더랬다. 전에 동생을 마중나왔을 때 봐두었던 히휘후히 멀티플랙스 영화관(이정도면 알겠지) 앞의 오락실에 들어가 이런저런 맘상하는 게임들을 하다가 적당한 시간에 출국 수속을 밟았다. 출국 게이트 앞에 앉아 비행기를 잠시 바라보다가 프습에 넣어둔 러블리 컴플렉스를 조금 보고 있자니 탑승이 시작되더라. 자리를 잡고 앉아 지인들에게 안부문자를 돌리려려다 제지당하고 디카를 꺼내 사진을 찍으려다 제지당하고 스튜어디스 누님에게 농담따먹기를 걸었던 걸 제외하면 지극히 평범한 기내식과 별 특별한 이벤트 없는 비행을 거쳐 하네다 공항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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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네다 공항에서 내려서 동생과 라야 후배 녀석들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약속장소는 일단 신주쿠역으로 잡고, 교통편은 요금보다는 시간을 생각해서 모노레일을 타기로 했다. 하네다 공항은 국내선 1청사(터미널), 국내선 2청사(터미널), 국제선 청사(터미널) 3개의 청사로 구성되어 있었고 각 청사 사이에는 무료 연락버스가 돌고 있었다. 각 버스의 운행 간격도 짧은 편이라 줄은 길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연락버스에 탈 수 있었다. 국제선 청사 다음 정류장은 국내선 1청사였고, 이곳 지하에서 하마마츠쵸까지 가는 모노레일을 탈 수 있었다. 무려 470엔이라는 가격이긴 했지만 풍경이 흘러가는 것에서 느낄 수 있을 만큼 빨랐고 승차감과 구조가 지하철-전철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어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운송수단이었다고 하겠다.
일본에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일본의 지하철은 각종 사철들이 복잡하게 놓여있어 역을 통과하는 노선의 수가 많은 경우도 있고, 서로 다른 이름의 역이지만 구불구불 하나로 이어져 있기도 하고 떨어져 있지만 사실은 주변 역이기도 한 경우도 있고 그렇다. 하마마츠쵸 역은 건물 윗부분에서 모노레일이 내리고, 모노레일 승강장에서 아래로 몇 개 층을 내려오면 JR 하마마츠쵸 역을 만날 수가 있는 구성이었다. 약간 해메긴 했지만 비교적 무사히 야마노테센을 찾아 승강장으로 내려섰다. 정말이지 한국 서울의 지하철을 연상케 하는 컬러와 노선 구성인 야마노테센을 타고 신주쿠 역으로 향할 수 있었다. 한참을 달려 신주쿠역에 도착해서, 아무 생각없이 서구(니시구찌)로 내려 전 라야 운영자 맡쨩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만나기로 한 곳은 남구.... 지하철 5호선 종로3가 출구에서 지하철 1호선 종로3가 출구로 찾아가는 기분이랄까... 그보다 더 멀었던 것 같기도... 아무튼 그런 길을 걸어 마침내 맡쨩과 오랫만에 해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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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반쪽이 된 맡쨩과 반가움을 나누고 koshi(이하 곳찡)를 기다리기 위해 남구로 오는 길에 봐 두었던 요도바시카메라 쪽으로 이동했다. 요도바시가 있던 근처는 오락실과 밥집, 각종 상점이 밀집해 있는 소위 돈 쓰기 좋은 곳이었다. 문득 눈에 띈 클럽 세가가 반가워, 얼른 들어가서 이니셜D 4th에 앉았다. 애석하게도 국내판 카드는 사용할 수 없었지만, 훨씬 세세한 설정이 가능한 일본판 카드를 만들어 몇게임인가를 즐겼다. 제법 코인을 넣었을 무렵 곳찡이 클럽세가를 찾아왔다.이니셜D를 털고 일어나 지온의 쌍성을 한게임 가볍게 즐긴 후, 저녁식사를 하러 웬디스를 찾았다. 국내에선 인기가 없어 철수했던 웬디스... 역시 인기가 없어 철수했던 요시노야도 웬디스도 다 좋아했던 밥집이었는데 말이지. 웬디스에 들러 카레 뭐시기뭐시기 버거(...)를 물어뜯으며 도전 정신에 회의를 품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맡쨩의 휴대전화로 동생과 연락을 취해, 신주쿠역 동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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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오락실에 들러 기타도라V4의 세션 플레이를 셋이서 잠깐 즐기고, 하하히 하하히호(모 아이돌그룹의 리더.. 이정도면 알겠지. 노래 못하면서도 가수를 하고 있는 쾌!감!)와 호하후히(아무리 벗어도 섹시하지 않아요... 이정도면 알겠지. 큐티하니 빤쮸패션..)의 열애설 스캔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제법 긴 길을 걸어 신주쿠역 동구를 향했다. 가부키쵸가 가까운 탓인지 물 차아아암 좋더라.. 쓰읍. 이자까야 삐끼들을 몇명인가 물리친 뒤에 동생과 합류하여, 동생의 저녁식사를 간단히 해결하고 곳찡의 안내로 가라오케를 찾아갔다. 보너스 절대 없는 살벌한 일본인 만큼 2시간을 끊고 오랫만의 가라오케를 즐겼다. B'z 노래를 좀 달린 탓에 일찌감치 목은 가버렸지만 즐겁게 노래하고 논 자리였다. 동생녀석의 벤쇼쯔키와이와, 함께 듀엣했던 타마마 폭주버전 침략자가 무척무척 기억에 남았다....
이내 2시간이 지나 룸을 나와 곳찡의 휴대전화 쿠폰을 이용하여 저렴하게 계산을 치르고, 길을 거슬러 올라와 신주쿠 동구에서 맡쨩, 곳찡(합쳐서 두권이라고도 한다..)과 작별을 고하고 동생과 함께 얼마간 길을 걸어 지하철을 타고 동생의 아파트로 향했다. 오피스 거리 한가운데 위치한 작은 아파트에 도착해서 샤워를 마친 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마시는 맥주의 맛을 무엇에 비기랴.... 비슷한 취향의 노래를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밤이 깊어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동생에게서 다음날의 추천 관광 스팟과 교통편을 소개받고 잠자리에 들었다. 조금은 더운 느낌이었지만, 피곤을 수면제삼아 금세 깊게 잠들 수 있었다. 거의 꼭 1년만의 일본행 첫날은, 무척 덥고 피곤했지만 반가운 얼굴들을 잔뜩 만났던 즐거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