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공기를 한껏 느끼며 동생이 맞춰 둔 시계의 알람을 들으며 눈을 떴다. 열대야라고는 들었지만 피곤했던 탓인지 자면서 깰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놀러온 형 때문에 동생이 지각하는 사태를 만들기 싫어서 괜해 동생을 급하게 깨우고 호들갑을 피웠지만 동생은 오히려 시간도 넉넉하고 괜찮다는 반응이었다. TV를 틀어 아침방송을 보며 교대로 세면실을 이용하고, 씨리얼과 우유로 간단한 아침을 해결한 후 동생의 아파트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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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파트 부근은 전체적으로 사무실이 많은 동네였고, 덕분에 열심히 출근하는 샐러리맨들 틈에 섞여 괜한 우쭐함을 느끼며 전철역을 찾아갔다. 이 날은 지하철을 많이 이용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지하철 1일 프리패스를 끊었다. 1,000엔이라는 가격이 결코 싸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거리를 움직일 계획을 잡고 나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돈을 번 셈이었다. 다만, JR은 환승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JR을 탈 때에는 동생에게 빌린 파스모(PASMO. 우리나라의 교통카드와 같은 개념이지만 상점에서 물품을 구매할 때에도 사용이 가능한 전자 화폐 기능을 갖추고 있다)를 충전하여 사용하기로 하였다. 오봉야스미 기간이라 그런지 출근 시간에도 한가한 전철을 보며 동생은 감탄을 했다. 소곤소곤 담화를 나누다 히비야역에서 동생은 직장을 향해, 나는 메이지신궁을 향해 각자 다른 노선으로 환승을 했다.
ㄴ. 오전 - 메이지 신궁(메이지진구)
환승 계단을 올라, 내려야할 역인 메이지신궁앞 역의 방향을 확인하고 마침 도착한 지하철에 올랐다. 이 쪽도 한가하긴 마찬가지여서, 프습으로 음악을 들으며 한가한 차량안의 모습과 오늘의 일정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여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이윽고 목적지인 메이지신궁역앞에서 내리게 되었다. 메이지신궁 입구 방향 출구로 나와보니 바로 눈 앞에 JR 하라주쿠역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결국 메이지신궁앞이나 하라주쿠나 거기가 거기...음... 더운 여름에 강행군을 하려면 역시 초코바와 생수가 필요한 법이고, 마침 떨어진 디카의 배터리 또한 구매해야 했기 때문에 역 입구 바로 옆에 붙어있던 편의점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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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을 마치고 힙색을 여닫는데, 힙색의 끈이 너덜너덜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번에 대강 손을 봐 두었었는데 워낙 험하게 사용하다보니 끈이 끊어지려 하고 있던 것이었다. 편의점을 다시 둘러보며 안전핀(옷핀?)이 있지 않나 찾아보았지만 이 편의점에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하라주쿠 번화가 쪽으로 내려가며 편의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하라주쿠는 듣기에 우리나라의 명동과 비슷할 정도로 번화한 거리라고 들었는데, 오봉야스미 기간의 이른 아침인 탓인지 동네자체가 영 썰렁하고 조용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편의점 천국 일본 답지 않게 안전핀을 파는 편의점을 발견하기까지는 제법 발품을 팔아야만 했었다. 결국 오모테산도 반대쪽 거리에서 편의점을 발견하여, 끊어지기 일보 직전의 끈을 정리할 수 있었다. 다시 튼튼하게 결속한 힙색을 매고 메이지신궁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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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신궁은 안쪽의 본궁(당?)까지 비교적 넓은 길을 제법 걸어서 들어가야 하는 구조였다. 길 양 옆에 꾸며놓은 조경이 마치 우리나라의 왕릉 들어가는 길과 흡사하다는 느낌이었다. 길 중간중간에 갈림길과 이정표가 보였고, 거대한 도리이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수많은 관광객들의 1/3은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 한국사람들 역시. 으음.. 아무튼 이어폰을 빼고 관광객들의 소음과 매미소리를 들으며 열심히 열심히 걸어들어가 보니 사진으로 익히 보았던 메이지신궁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부적과 소원을 적는 판을 판매하는 곳도 있었고, 무언가를 모시고 있는 궁도 보였고, 전통의상을 입고 왔다갔다하는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다. 비교적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많은 관광객들이 이 곳에 모여 있었다. 소원을 적기도 하고 이곳저곳 기웃거리기도 하면서 구경을 하다가, 들어온 길로 나가는 대신 옆길로 빠져보기로 했다. 본궁 외에도 무도관, 박물관, ??관 등의 다른 건물들도 많았고, 내가 들어왔던 하라주쿠쪽 입구 외에도 요요기 쪽으로 나가는 입구로 가는 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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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신궁은 전체적으로 꽤 넓었기 때문에 여기서만도 상당한 거리를 걸어야 했다. 관계자 외에는 출입할 수 없었던 무도관을 겉에서 구경하고, 마침 휴관일이었던 보물관(박물관?)을 지나 숲과 오솔길을 매미소리와 까마귀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구비구비 돌아, 하라주쿠쪽 입구로 다시 나올 수 있었다. 예전 용산 가족공원이 생각나던, 안쪽에 펼쳐져 있던 넓은 잔디밭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바쁘게 움직이기로 결정한 일정 탓에, 여유있는 오후에 잔디밭에 앉아 책이라도 본다면 참으로 여유로울텐데... 하는 아쉬움이 잔뜩 남은 그런 풍경이었다. 흐림과 맑음을 교대로 보여주던 하늘을 바라보며, 나무 그늘이 있는 길을 골라 하라주쿠역으로 나오니 슬슬 점심시간을 준비해도 좋을 시간이었다. 점심은 동생이 추천한 에비스역 근처의 가든플레이스에서 해결하기로 했던지라, 다시 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지하철이 아니라 JR을 이용하여 하라주쿠역에서 에비스역으로 이동하였다.
-------------------------------------------------------------------------------------------------- 사진도 많고 글도 많아져서 양을 나누었다. 아무래도 또 한달 이상 걸려서 완결할 것 같은 느낌이 팍... 여튼, 16일 정오-오후편으로 이어진다. 언제 올릴 지 기약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