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자선을 타고 제법 시간이 지나, 아사쿠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강렬한 태양화 함께 열심히 걸어다녔던 탓에 아사쿠사에 도착해서 전동차를 내릴 때는 다시 더위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조금 싫긴 했지만 이번 일본행에서 어쩌면 가장 기대햇었던 스팟이라고 할 수 있는 아사쿠사였던 탓에 다시금 발걸음을 빨리 하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했던 것에 비해 대 실망이었던 아사쿠사였지만, 그 원인이 많은 인파와 시장의 분위기 탓이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면 언제가도 실망하게 될 것 같아 좀 서글프긴 했다. 하기사, 썬더게이트(가미나리몽)로 대표되면서 그것에 가장 크게 이미지를 의지하고 있는 곳이니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뭐, 불평을 잔뜩 늘어놓고는 있지만 사진도 많이 찍었고 이것저것 구경도 많이 하긴 했다. 그럼 대체 뭐가 실망이었냐고 물으신다면, 좀 더 조용하면서도 전통적인 것을 느끼고 싶었던 기대가 충족되지 못한 것이 이유라고 말씀드리리다...
나름 구석구석 구경을 하고, 주변에 뭔가 색다른게 없을까 해서 좌우로 한블럭쯤 걸어가 봤지만 그냥 일본 시내만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자판기의 사이다로 목을 축이고 잠시 다리를 쉬다가, 동생이 추천했었던 우에노에 가기로 했다. 우에노자체보다는 아메요코 시장을 관통해서 아키하바라까지 걸어가보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우에노역에 내리자마자 지진피해자를 위한 모금을 하는 검게 탄 아저씨를 만난 탓에 아무 골목이나 쑥 들어간 것이 패착이라, 초반에 작은 시장골목을 지나고 나니 이내 파칭코 가게가 한동안 이어지고 결국 아무것도 없는, 말 그대로 회색 빌딩 숲만이 끝없이 이어졌더랬다. 토요일에 결국 아메요코 시장을 가게 되긴 했지만 만약 그 시장으로 가는 길을 이때 알았더라면 참 재밌게 걸어갔을테지만, 애석하게도 아무것도 없는 거리를 혼자서 30분 정도 걸어가는 대참사를 맞이하고야 말았다...
아사쿠사의 실망이 경로 선택 미스로 이어져 상당히 가라앉은 기분이 되어 아키바에 도착했을 때는 상당히 지쳐있었다. 옛 말에 지쳤을 때에는 전자파로 마음을 추스리라는 옛말이 떠올라, 가까운 오락실을 찾아보기로 했다. 오락실을 찾으려다 문득 고개를 드니 초 거대한 요도바시 아키바 점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쇼핑은 다음날 하기로 했던 탓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길이나 알아볼 생각으로 요도바시에 올라가보기로 했을 뿐이었는데... 정신차려보니 건프라 매장앞에 있었다. 제 버릇 개주나.. 하는 자책감에 MG 턴에이와 각종 건프라들을 둘러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은 뒤, 다시 거리로 나가 오락실을 찾았다. 아쿠에리안 에이지 등의 카드게임도 있었고 이상한 메달게임도 있었지만 환타지 분위기의 묘한 격투게임과 10년만에 만져보는 것 같은 아랑전설 스페셜, 그리고 기타도라 V4를 통해 전자파를 흡수하며 몸과 마음을 달래었다.(지랄...)
아무튼 다리를 한동안 쉰 탓에 어느 정도 기운이 나서 다음 목적지인 도쿄타워를 갈 차례였다. 히비야선 아키하바라역에서 히가시긴자역까지 가서 환승하여 다이몬역으로 가서, 거기서 도보로 도쿄타워를 가는 경로였다. 다이몬역을 나와 도쿄타워가 있는 방향으로 쭉 걸어가니 작은 공원을 하나 지나서 조죠지(증상사)를 만날 수 있었다. 조죠지는 규모가 제법 큰 사찰이었는데 이런 시내 한가운데에서 도심 풍경과 융합되어 있는 것이 기묘하게 느껴졌었다. 운이 좋았는지 내가 본당을 기웃거릴 시간쯤 법회를 하고 있었다. 종도 울리고 스님들이 쭉 나와서 경전도 읽고 그런 법회. 입구에서 가루로 된 향을 피우고 준비된 자리에 앉아 법회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나는 향은 피우지 않고 나름 조용히 뒤에 앉아 법회를 지켜보았다. 말도 알아들을 수 없고 딱히 불교 신자도 아니지만 그래도 엄숙하면서도 이국적인 가운데 어딘가 친숙한 느낌이 마음에 들었었다.
이윽고 법회가 끝나고, 애초의 목적지였던 도쿄타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조죠지는 뒷편에 배경으로 도쿄타워가 계속 보였던 탓에 도쿄타워까지 찾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조죠지 옆길을 따라 올라가서 사거리 하나만 건너면 바로 였으니깐... 도쿄타워는 개인적으로 남산타워가 그랬던 것처럼 별 느낌이 없었다.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야경을 보았더라면 또 모르겠지만 내부의 후줄근한 시설과 구성이나 컨텐츠가 그다지 감탄할만한 부분이 없었고. 도쿄타워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오히려 올라가는 길에 출출한 김에 하나 사먹었던 크레이프였달까.
어째 기대했던 스팟들은 실패하고 지나가던 길에 들렀던 절이 더 인상에 남아버린 것 같은 늘어진 기분으로 터벅터벅 다이몬 역에 내려오니 시간이 약간 애매해져 버렸다. 동생과 만나기로 약속했던 7시 반까지는 시간이 제법 남아버린게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녀석에게 약속시간 전에 전화하기가 뭐해서 어쩔까.. 하던 중, 해도 거의 져가는데 번화가쪽으로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롯폰기에 가보기로 하고 노선을 조사하고 전철에 다시 올랐다. 롯폰기에 도착해보니 이미 어두웠던데다 길이 좁았던 관계로 사진은 남기지 못했지만, 깜짝 놀라게 예뻤던 호스티스와 정말이지 언밸런스한 느낌이었던 호스트들이 기억에 남는 그런 곳이었다.
조금 돌아다니며 네온사인을 보다가 눈에 띈 오락실에 들러 게임을 조금 하고 있자니 슬슬 약속시간이 가까워왔다. 동생과 전화로 만날 장소를 정하고, 장보기를 겸하여 저녁을 먹고 다시 동생의 아파트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맥주를 마시며 생각해 보니 하루 동안 참 많은 거리를 돌아다녔던 것 같아 어쩐지 인생의 하루를 참 열심히 산 것 같은 흡족함이 느껴져왔다. 다음날은 동생이 회사에 휴가를 내고 함께 움직여주기로 했기 때문에 둘 다 느긋하게 TV를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느즈막히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