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무릎이 아픈 것이 걱정되긴 했지만 다행히 아침에는 통증이 가라앉아 있었다. 이틀을 꼬박 강행군을 한 탓에 피로도 조금 쌓인 것이 느껴졌고 기대했던 스팟들이 대부분 실망스러웠던 탓에 도쿄는 더 이상 돌아다녀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득한 아침이었다. 게다가 날씨까지 비라도 올 듯 흐렸으니 아침 일찍부터 돌아다니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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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과 같이 마료카트를 즐겨보기도 하고 TV를 보면서 데굴거리다가, 슬슬 덕후쇼핑이라도 해볼까 하고 아키하바라 쪽으로 방향을 잡고 집을 나섰다. 전날 저녁에 왔던 거리를 되짚어 농담따먹기를 하면서 슬슬 걷다보니 이윽고 어제 저녁에 보았던 아키하바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된 목표는 결과적으로 꽝이 되었던 '저 밴드'와 닮은 밴드를 비롯한 부탁받은 것들을 구하고 기왕 일본에 온김에 게임 소프트 한두개 정도와 동생의 디지털 카메라 구매 정도.
동생의 새 디카.
동생의 새 디카 오픈
아키바역을 통과하여 상점가를 거닐며 소기의 목적을 어느정도 달성하고, 길거리의 메이드카페 홍보 메이드들들 구경하기도 하고 돌아온 쓰레기 어벙게리온을 비웃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슬슬 이 날의 가장 큰 목적인 수퍼요사코이 2007 프리이벤트를 구경하러 하라주쿠로 이동하기로 했다. 동선 가장 마지막에 두었던 동생의 디지털 카메라 구매는 우리나라에서 하하화를 뒤져 최저가를 검색하고 오프매장에 찾아가 최저가로 바로 구매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아 조금 놀랬었다. 매장에 별로 인테리어랄 것이 없었던 것과, 그 단순명쾌한 구매과정까지 모두. 하라주쿠를 찾아가는 길은 2일 전에 갔던 메이지신궁역으로 가지 않고, 오모테산도에서 내려서 하라주쿠를 구경하면서 걸어 올라갈 예정으로 이동했는데, 사람도 많고 화려한 젊은이의 거리라는 명성에 걸맞긴 했지만 정리된 명동이라는 느낌을 받는 정도였지 어떤 감동은 없었다. 세일러복의 여고생이라는 이미지를 그대로 형상화한 한 여고생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랬던 것을 제외하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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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오프에 들러 만화책을 조금 구경하다가 샌드위치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 후, 메이지신궁역 지하로 이동하여 프리이벤트를 구경하기로 했다. 시작 30분 전에 도착하였지만 이미 제법 많은 사람들이 행사장을 둘러싸고 있었고, 나와 동생은 그럭저럭 괜찮은 자리를 잡고 이벤트를 구경하였다. 일본의 행사나 명소가 그런 경향이 많지만, 이름이나 명성에 비해 규모가 작은 경우가 많아서 실망하는 수가 있다. 프리이벤트라는 말과 곳곳에 붙어있던 포스터를 보고 기대를 크게 한 탓에 공연의 규모가 생각보다 작은 것에 조금 실망을 하긴 했지만 프리이벤트에 참가한 팀들의 퍼포먼스를 보고 그런 실망은 모두 사라지게 되었고, 오히려 귀국한 다음인 일주일 뒤의 2007 수퍼요사코이 본편에 대해 더욱 기대를 품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본편에 대한 포스팅이 있는 동생의 블로그를 트랙백 해두니 관심있는 분은 찾아가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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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이벤트를 다 보고, 마지막으로 2일전에 제대로 보지 못한 아메요코 시장을 가보기로 했다. 하라주쿠에서는 거리가 제법 되어서, 북오프에서 구매했던 만화책을 보기도 하고 바깥 풍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긴 이동시간을 지나보냈다. 우에노역에 내려 동생의 카메라에 사용할 액세서리를 구매하러 우에노역의 요도바시 카메라를 찾았는데, 이제껏 보았던 요도바시와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규모에 놀랐다. 뭣보다, 건프라 매장이 없는 것에 크나큰 실망을.... 먹으면 막장이겠지만.. 아무튼. 그래도 가전제품 류는 거의 갖추고 있는 우에노 요도바시에서 필요한 것을 구매하고, 동대문 시장과 남대문 시장과 청계천을 뒤섞어 놓은 듯한 분위기의 아메요코 시장을 구경했다. 약간의 기념품을 사고, 뜬금없는 위치에 있던 게임센터에 들러 기타도라V4를 조금 즐기고, 애초의 목적대로 일찍 돌아가기로 했다. 슬슬 왼쪽 무릎도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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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동생의 아파트에 돌아와서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러블리 컴플렉스-러브콤-라부콘-ラブ★コン을 보고, 전날 봐두었던 모스버거를 찾아가 버거와 치킨을 사왔다. 저녁과 함께 맥주를 마시고, 원래는 돌아갈 짐을 싸고 나서 가라오케를 갈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짐을 싸는데에 시간이 걸려버리는 바람에 가라오케는 결국 다시 가지 못했다. (이걸 한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 그리고... 여행을 다녀보신 분들이라면 잘 아실 듯한, 깊어가는 밤을 아쉬워하며 여행 마지막 잠자리에 드는 기분을 애써 떨쳐버리며 잠을 청했다.
8월 19일
비행기 시간이 빨랐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서둘렀다. 전날 챙겨둔 캐리어와 등짐을 짊어지고, 익숙해진 동생의 아파트를 나서는 발걸음이 왜그렇게 무겁던지... 동생의 아파트 주변에는 지하철 노선에 제법 많이 지나다니고 있었는데 그 중 특급 한 노선이 하네다 공항까지 바로 가는 노선이었다는 것을 동생이 알려주어, 그걸 타고 공항까지 갔다. 올 때는 모노레일을 타고 하마마츠로 와서 이러저리 돌아다녔는데, 정작 당장 동생 집에서 공항은 간단하고 빠른 길이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아슬아슬한 예산을 들고가서 알차게 다 쓰고 오는 습관은 이번에도 변하지 않아서 동생에게 맛난 걸 사주거나 하지도 못하고, 임박한 탑승 시간을 아쉬워하며 동생과 헤어져 출국심사대로 향했다. 이후는 그저 그랬던 기내식과 이젠 익숙한 한국-일본 노선의 비행, 그리고 군생활 시절 숙달했던 김포공항-우리집까지의 귀로였다. (...귀로라고 적고 보니 DMC 2권이 생각나버리는...) 막상 다녀왔을 때는 도쿄로 여행 가는 것은 더이상 필요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놓친 스팟들이 제법 있어서 시간이 흐른 뒤에 한번쯤 다시 도전해 볼까 싶기도 하다. 올해는 더 이상 멀리 나들이 갈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과연 다음번멀리 나들이는 어디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