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첫 토요일..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에서 일주일전, 아버지와 나, 두 부자(父子)는 뜬금없이 카메라를 들고 동네로 나섰다. 재개발이 한창이라 마을 사람들이 거의 다 떠나고 남은 사람들도 떠날 채비를 갖추는 계절에, 20년 넘게 살아온 동네의 스러져가는 모습이나마 카메라에 담아두고 추억속에 넣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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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깊어지다 못해 겨울의 그림자가 조금씩 드리우기 시작한 늦가을, 20년전에 논이었던 자리에 들어섰던 비닐하우스들은 흉한 흔적만을 남기고 무너져 트인 시야를 다시 돌려 놓았고, 낡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던 오래된 집들은 이미 무너져 내린 곳도 많았다. 아버지와 나는 역시 오래된 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20년 전에 다녔던 초등학교 가는 길을 더듬어 갔다. 그리고 군데군데에 좋은 경치를 간직한 한적한 길로 접어들어, 이런 저런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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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나도 사진에 조예 따위는 없다. 그저 손에 카메라를 들고 좋아 보이는 경치를 찍으러 길을 더듬어가는 것 그 자체에 흥미가 있었을 뿐. 깊어가는 가을, 무너져가는 고향마을, 쓸쓸하면서도 어딘지 따뜻한 바람,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들게 해 준 푸르디 푸른 하늘. 무섭기만 했던 아버지와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게 된 것이 언제쯤부터였을까.... 아버지와 둘이 나갔던 나들이는, 쌀쌀한 바람이 불었지만 바람과 더불어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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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떠나있는 동생이 또 다시 돌아오면, 어머니도 함께 셋이서 또 나들이를 나가고 싶다. ...진짜 나이먹나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