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 여행. 야행성 육식 조류인 올빼미처럼, 출발하는 첫날밤을 이동 및 도착 시간으로 활용하는 여행상품을 의미한다. 여행에 관심이 많은 젊은 직장인들을 위한 기획 상품으로, 주말을 이용하여 상당히 하드한 일정으로 여행을 가능하게 해 주는 이 상품은 개인적으로 그다지 선호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금요일 밤 10시에 광화문으로 향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광화문에서 12시 출발을 예정하고 있는 공항 전세버스를 타기 위해서.
1. 일단은 광화문
- 순신이형 동상이 굽어보는 광화문 4거리는 그 규모에 걸맞게 상당히 많은 노선이 지나간다. 36년 넘게 그린벨트에 묶여있는 후미진 우리 동네까지도 한번에 오는 버스편이 3개나 있으며, 인천-김포-성남 등을 아우르는 시외/야간 버스들이 많이 포진해 있는 덕분에 12시가 넘은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 여행은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12시 반에 출발하는 전세버스가 제공되는 탓에 그 출발지인 광화문에서 집합하기로 되어 있었다. 어설픈 야근을 마치고 서둘러 귀가한 나는 대강 옷보따리를 꾸리고 여권과 프습을 확인한 후 컴터 앞에 앉았다. 출발에서 도착까지 대략적인 시간을 계산하고 노닥거리기 위해서였다. 이내 동행하기로 한 JK군에게서 연락이 오고, 출발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다른 일이 손에 잡힐 것 같지도 않아 가방을 들쳐매고 집을 나섰다. 보통은 지친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오는 시간에 집을 나서려니 오랫만에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 들어 조금씩 들뜨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광화문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가 바로 온 덕에, 예상보다 1시간쯤 이른 시간에 광화문에 도착하게 되었다.
대학시절 자주 보았던 광화문의 야경이 무언가 새삼스럽게 다가왔고, 도착하여 얼마 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JK군과 합류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조금씩 밀려오는 흥분과 공연, 일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잠시 잠이 들었다가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항에는, 인천파인 미르시내님과 키란님이 미리 도착해서 심심하고 졸리고 배고픈 시간을 보내고 있...을 터였는데, 도착해 보니 맥도널드에서 든든한 야참을 처리하는 중이었다.
2. 인천공항에서
- 항상 복작복작하고 밝은 시간에만 몇번 와보았던 공항의 심야는 꽤나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었다. 불꺼진 곳도 많고, 사람도 없고. 아직도 깨끗한 새건물 분위기가 나는 공항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하면 정말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다니다, KTF 서비스 데스크에서 로밍폰을 받았다. 원래 일정 금액의 대여료가 있는데 나는 KTF를 오래 써서 그게 없다던가... 통화료는 여전히 비쌌지만. 기계는 NOKIA의 슬라이드형 폰이었는데, 무려 중국용 폰이고 기능이 해괴해서 외장 시계를 표시하는 것을 알아내는데에만 상당한 시간을 허비하게 되었다. 로밍폰을 수령하고 3층으로 올라가니 비슷한 여행상품으로 떠나는 일단의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늦은 밤시간인 만큼 활기가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가방을 끌어안거나 들쳐매거나 의자에 기대 앉은 모습들 속에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읽을 수 있었다. JK군과 키란님은 나와 같은 여행사였고 미르시내님은 다른 여행사였는데, 이 두 여행사의 집합 게이트가 너무나 멀어서 오밤중에 공항을 제법 걸어다닌 기억이 새롭다. 앞으로 오사카에서 걸어다닌 것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여행사 직원에게서 설명을 듣고 티켓을 받은 뒤 출국 심사와 짐검사를 받고 탑승구쪽으로 나가니 탑승구 주변의 의자들은 모두 침대로 바뀌어 있었다. 비행기가 새벽을 통해 움직이는데다 다음날은 하루 종일 강행군을 할 예정들일테니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행동들이다. ...사실 좀 보기 거식했던 것도 사실이긴 했다. 탑승구에서 약간 떨어진 빈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잠시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이내 탑승 시간이 되었다. 키란님은 비행기 1층, 나와 JK군은 비행기 2층에 준비된 자리에 앉아 비행기의 이륙을 기다렸다. 한참 깊은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시간에 비행기는 서서히 이륙했고, 의자를 다시 뒤로 재낄 수 있게 된 시점에서 짧은 단잠에 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