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잠들기 전에 일찍 일어나서 돌아다니자고 했던 약속을 무참히 깨버린 남자방의 3인은 민망함을 묵묵히 넘기며 부랴부랴 준비를 마치고 서둘러 방을 나섰다. 후쿠오카 베이베 6명 중 가장 먼저 귀국길에 오르는 한 분의 소망을 위해 우선 텐진으로 이동했다.
전날 유용하게 사용했던 1일 프리패스를 구매하기 위해 하카타 역 부근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잠시 부질없는 삽질을 좀 하다가, 어제 구매한 기억을 떠올린 멤버들의 말에 따라 우선 텐진 부근으로 가는 버스를 찾았다. 알고보니 프리패스는 버스안에서 기사님을 통해서도 구매할 수 있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2명은 페어권을, 3명은 패밀리권을 구매하기로 했다. 한 사람 앞에 500엔으로 버스 2번만 타면 본전을 건지는 놀라운 마법의 패스.. 프리패스를 구매하고 전날 JK군과 함께 텐진을 지나갔던 기억을 더듬어 버스에서 내려, 기가텐진 부근에 있는 라멘야 이치란을 찾아갔다.
전체적으로 요렇게 생겼다.
주문시트에 챠슈를 표기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으니 주의.
사진이 잘 안나왔지만, 국물까지 다 먹으면 흔히 볼 수 있는 감사문구.
이치란은 하카타식 라멘을 하는 전문점으로, 일본 전국에 체인점이 있고 국내에도 상륙했다던가 하는 곳이었다. 점심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인 탓에 손님은 별로 없었지만, 자리를 정리하는 사이 잠시 밖에 대기하며 이 곳을 다녀간 유명인들의 사인을 구경했다. 이윽고 자리를 안내받아 이치란 특유의 주문 시트를 작성하여 제출하자 잠시 후 라멘이 나왔다. 제출 시트는 면의 굳기, 국물의 농도, 챠슈 포함 유무 등 비교적 자세하면서도 간단히 취향껏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이치란의 최대 특징은 마치 독서실 같은 느낌으로 조용하고 차분히 혼자서 라멘을 먹는데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점이었는데, 한국인 관광객 6명이 찾아가 식사를 하다보니 사진도 좀 찍고 약간은 소란스럽지 않았나.. 싶다. 많은 유명인들이 찾아오고 전국적 체인을 갖춘 라멘야 답게 라멘은 상당히 맛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일행은 귀국하는 1명의 여성동지와 함께 쇼핑/배웅을 할 여성팀과 관광객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떤 남성팀으로 잠시 나뉘어 행동하기로 하고 이치란 골목 옆에 위치한 스타벅스 앞에서 몇 시간 후 커널 시티 지하에서 만날 약속과 함께 각자 길을 나섰다. 남성팀 3명은 스타벅스 옆에 있던 대형 중고 취급점 기가텐진을 찾아갔다. 기가텐진은 츠타야나 북오프 같은 느낌의, 음반-서적-게임소프트 등의 중고를 취급하는 곳으로 우리가 들어갔을 때는 마침 엘르가든을 매장안에 틀고 있어서 즐거운 느낌으로 아이쇼핑을 시작했다. 국내에선 보기 힘든 중고 게임 소프트들과 음반을 몇번이나 들었다 놨다 하면서 [도쿄 가서 살끄다.. 그럴끄다.. 이거 다 도쿄가면 있다..]라는 자기최면을 걸며 지갑을 걸어잠그며 금욕 아이 쇼핑을 잠시 즐기고 기가텐진을 나섰다. 큰 길을 따라 이동하다보니, 텐진중앙공원을 만날 수 있었다. 텐진 중앙공원은 10여년전 나를 덕후의 세계로 잠시 빠뜨렸던 추억의 게임 도키메키 메모리얼의 만만한 데이트코스 키라메키 중앙공원을 떠올리게 하는 공원이었다. 한여름이라 그런지 눈부시게 싱그러운 신록이 가득하면서도 주변의 건물들에도 식물이 녹아들어간 듯한 느낌이 주는 색다름과 편안함, 그리고 선그라스에게 감사했던 눈부신 태양까지.
비록 날씨는 더웠지만 2명의 청년과 한명의 아저씨는 디카를 꺼내들고 여기저기 셔터를 누르며 행락객 기분을 만끽했던 것이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공원을 둘러보며 공원을 통과하다, 다리위에 있던 휴식공간에서 잠시 다리를 쉬며 하늘과 외국의 공기를 즐겼다. 전날 JK군과 통과했던 풍경이 시야 한쪽에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느긋하게 커널시티로 이동하여 전날 한 번 다녀봤다고 익숙해진 코스를 밟아 약속장소로 걸음을 옮겨, 거의 어긋나지 않게 2명이 되어버린 여성팀과 합류했다.
원래는 여기서 커널시티를 또 대략 훑어보고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지만, 약속장소 근처에 있던 캐릭터 상품거리에 있던 점프샵과 울트라맨샵에 정신을 빼앗긴 일행들은 나름 만족스러우면서도 아쉬운 시간을 보냈다.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써버린지라 서둘러 커널시티 부근에 있던 모스버거로 이동하여 점심을 해결하고, 가라오케로 이동하려던 여정을 수정하여 곧 영접할 B'z 두 분의 손 모형이 위치한 후쿠오카 야후돔에 가보기로 하고 버스편을 알아보았다.
야후돔은 텐진에서는 조금 거리가 있기는 했지만 프리패스로 탈 수 있는 버스가 커버해 주는 구간이었고 번화가였던 텐진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버스를 발견하여 탈 수 있었다. 쨍쨍했던 날씨가 버스를 내리자 점점 우중충하게 변해가긴 했지만, 야후돔 앞에 있는 두 분의 손을 만나러 가는 길에 방해가 될 수는 없었다. 보이는 것보다 제법 되는 거리를 씩씩하게 걸어 마침내 두 분의 작은 손-정말 작았다-을 영접하고 있자나 우중충하다 못해 무서워진 하늘에서 금방이라도 내릴 것 같은 비를 피해 야후돔 앞에 있던 호크스타운의 게임센터-토이자라스에서 시간을 보냈다.
후쿠오카의 게임센터들은 저질이라 이곳에서도 기타도라는 없었고, 토이자라스에 있던 수많은 케로로-건담 관련 아이템은 다시 한 번 [도쿄 가서 살끄다.. 그럴끄다.. 이거 다 도쿄가면 있다..]라는 자기최면을 걸며 100엔도 안했던 칼피스 쭈쭈바를 빨게 만들었더랬다. 전날 굿즈를 다 사둔 탓에 여유는 있었지만 슬며시 비가 그칠 시간과 라이브짐 시작시간이 맞지 않을 것 같다는 걱정이 들어, 최소한의 우산을 구매하여 야후돔을 뒤로 하고 마린멧세를 출발했다. 원래는 하카타역까지 되돌아가서 전날 탔던 임시 급행을 탈 예정이었지만 텐진 외곽에서 야후돔과 마린멧세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있던 덕에 갈림길에서 내려 마침 오던 만원 임시 급행버스를 탈 수 있었다. 여유가 있던 전날과는 달리 약간의 조바심과 2년만에 그 분들을 뵙는다는 설레임에 버스의 달리는 길은 어찌그리 더디던지. ...비 탓에 길이 막히 것도 있었지만서두. 이윽고 마린멧세에 도착하여 입장을 하고 B'z의 공연을 즐겼다.
이 날의 메인 이벤트였고 올해 가장 감격했던 순간이긴 하지만 글재주도 없고 공연의 감상을 표현하기엔 모르는게 너무 많다 보니.. 너무나 좋았다는 한마디로 갈음해 본다. 공연을 감상하고 나와 감격으로 가득찬 가슴과 주린 배를 끌어안고 길게 늘어선 임시버스 행렬을 비웃으며 전날 파악해 둔 일반 시내버스를 느긋하게 잡아타고 하카타역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제법 늦었던 탓에 하카타역 지하 푸드코트가 대부분 문을 닫았었지만, 다행히도 2층에 한 카레가게가 영업을 하고 있어서 저녁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카레 자체에는 별 불만이 없었지만 옆 테이블에서 아이를 앉혀 놓고 담배를 피우던 부부가 좀 그랬더랬지만.. 취향이니 존중할 밖에. 저녁을 먹고 편의점에서 맥주와 안주거리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온 일행은 샤워를 마치고 전날처럼 M.T 분위기로 맥주파티를 즐겼다.
사진이 전부는 아니지만, 여튼 새우깡과 B'z과자, 아쿠아블루 맥주, 기린, 삿포로의 드래프트원.
내 사랑하는 프습3호기로 B'z의 영상들과 음악을 즐기며. 또 시계바늘이 새벽1시를 지나치도록 공연의 감상과 앞으로의 계획을 비롯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또 아쉬움을 한조각 남겨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후쿠오카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