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잠들지는 못했지만 나름 깊은 잠을 좀 자고, 동이 튼 후부터는 선잠을 자다깨다하면서, 버스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도쿄시내로 진입했다. 진입하는 시간이 평일 아침이었던데다 공사를 하는 구간이 있어서 예정보다 시간이 조금 지나긴 했지만, 찌뿌린 하늘과 무거운 공기가 가득한 신쥬쿠 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도쿄역으로 갔더라면 더 좋을 뻔 했지만 그래도 작년에 다녀본 곳이라 조금은 익숙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신쥬쿠에서 내렸다. 버스 안에서 14시간을 지낸 탓인지 무릎이 조금 뻐근한 감은 있었지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컨디션이었다.
동이 트고 얼마 안되어 머물렀던 서비스에리아에서 폰카로. 내리진 않았었다.
밤새 감지 못한 머리를 모자로 감추고, 선글래스를 꺼내어 끼고 신쥬쿠 역 쪽으로 걸어가면서 동생과 후배 #1090군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저녁 약속을 잡았다. 일단 시간이 어정쩡한 관계로 점심시간에 하마마츠쵸 역에서 조금 걸어 심바시 부근에서 동생과 접선하기로 하고, 남는 시간을 일단 신쥬쿠역 탐험으로 돌리기로 했다. ...탐험이라곤 하지만 우선 빈 위장을 채우기 위해 처음 가보는 프렌차이즈 밥집 스키야에 들어가 김치계란규동을 먹어보았다. 이름 그대로 심플하게 쇠고기덮밥에다가 달걀과 김치를 얹어서 나온, 그다지 신기할 것 없는 맛이었지만 주린 배를 채우는데는 충분한 메뉴였다. 엄청 빵빵한 배낭을 옆 의자에 내려놓고 모자도 벗지 않고 느긋하게 식사를 하는 외국인을 흘끔거리는 일본인들 내 나름 관찰하며 천천히 식사를 해결하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 다행히 찌뿌렸던 하늘은 조금씩 개이고 있었다.
일단 시간을 죽이기 위해 게임센터를 찾아보기로 했는데, 아침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파칭코 문을 열기를 기다리는 줄이 여기저기 서있는 것이 황당한 기분이었다. 별로 시간을 들이지 않고 게임센터를 찾아 들어가보니 후쿠오카의 저질스런 게임센터와는 달리 기타도라V5를 비롯한 내 취향의 게임이 잔뜩 있었다. 우선 반가운 마음에 드럼V5에 코인을 넣어보았다. 1크레딧 200엔이라는 금액이 좀 아쉬웠지만-나중엔 100엔인 곳도 많다는 것을 알게되었다-신곡인 샹그리라(챳토몬치), 메이데이(범프오브치킨), 창성의아쿠에리온, 절망빌리(맥시멈더홀몬)을 두들겨보면서 기대치에 어긋나지 않는 즐거움을 맛보기도 하고, 후쿠오카에서도 한참을 망설였던 P.O.D 시스템 전장의 키즈나를 구경해 보기도 하고, 도쿄 입성기념 오토메디우스 피규어 크레인을 하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덧 슬슬 하마마츠쵸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하마마츠쵸는 작년에도 가 보았던 곳이라 어렵지 않게 전철을 타고 이동할 수 있었다. 날이 맑아지면서 태양도 작렬했기에 모자와 선글래스를 동시에 착용하고 있었는데, 가방 덕분에 한눈에도 여행객임을 알 수 있는 외형에 수상해 보이는 포인트가 추가된 탓인지 사람들의 힐끔거리는 눈길을 느낄 수 있었다. 하마마츠 쵸에서 내려 작년에도 가보았던 도쿄타워가 보이는 사거리에서 동생을 만나, 작년엔 오다이바로 가기 위한 모노레일을 탔던 근처의 이탈리안 거리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었다. 이탈리안 거리였지만 동생의 추천으로 카레를 먹었는데, 별 생각없이 매운 정도를 4로 정했다가 식사 후반에 좀 난관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동생의 회사쪽으로 이동하면서 가는 길을 메모한 약도를 건네받고 저녁에 다시 만날 약속을 잡았다.
다시 혼자 되어 히비야센을 타고 처음 가보는 동네인 타케노즈카로 이동하며 프습의 남은 배터리에 신경쓰며 며칠만에 프습으로 게임을 즐겼다. 도코에 오자마자 오덕하게 노는 것 같아 좀 씁쓸했지만, 동생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한 관계로 짐을 내려놓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는 이동이었다. 멀다기엔 좀 가까운 것 같고 가깝다기엔 좀 무리가 있는, 나름 납득할 만한 거리를 이동하여 동생 부부의 신혼집에 찾아가 보니 아담한 신혼집 분위기가 물씬 느껴져 새삼 민폐라는 생각이 들었다. 체면은 안서지만 예산이 빠듯했던 관계로 염치 불구하고 신세를 지게 되긴 했지만. 가방을 내려놓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제수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동생의 퇴근과 후배 #1090 녀석과의 저녁식사를 맞추어 아키하바라로 이동했다. 1년만에 다시 가 본 아키하바라는 여전했지만, 동생의 추천으로 동생 내외-후배 #1090군과 함께 저녁으로 아키바가-아키바버거를 먹으러 가 보았다. 동생의 포스팅에서도 봤었지만, 아키바가는 햄버거라고 볼 수 없는 개념의 먹거리였지만 맛은 제법 괜찮았다. 음료수의 탄산과 서비스 맥주에 대한 기대가 무산된 점이 아쉽긴 했지만.
저녁을 먹고 잠시 게임센터에 들러 아침에 뽑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코나미의 오토메디우스와 기타도라, 스파4를 조금 즐겨보고 ppoilove 선배님과 연락이 닿아 합류하여 함께 타케노즈카로 돌아오게 되었다. #1090군과는 다음날 점심께 만날 약속을 하고. 동생 내외와 같은 동네아 살고 계신 선배님과 함께 전철에서 타케노즈카 부근의 유명한 동네 키타센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전철을 내려서는 4명이서 잠시 가라오케에 들러 1시간 가량 돌다가 각자 집으로 향했다. 동생의 신혼집 부근에는 역전에 어지간한 상점가가 모여있는데다 동네는 전형적인 주거지구였던 관계로 생활 환경 자체는 제법 쾌적해 보였다. 어쩐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다른 나라로 넘어온 것과는 또 다른, 다른 나라의 먼 도시를 하룻밤에 이동했구나 하는 감상과, 지인들과의 재회와는 별개로 어쩐지 도쿄는 좀 재미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과 내일은 어떻게 움직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