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부쿠로에서 시부야는 전철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유명한 동네이긴 하지만 내 행동패턴으로는 관광 코스에 아무래도 넣을 것 같지 않았던 곳을 하루에 두탕으로 해결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일단 움직이고 또 여행객 기분이 되어 나쁘지 않았다.
유명한 하치공 동상. 정밀이지 많은 사람들이 이 근처에서 약속을 잡고 기다리고 있더라.
시부야 역도 제법 규모가 있었는데, 다행히 역 주변 안내도가 잘 되어 있었고 약속 장소의 설명도 충분히 들었던 탓에 어렵지 않게 약속장소였던 하치공(公) 상 앞으로 갈 수가 있었다. 시부야의 명소이면서 약속장소로 널리 쓰이는 곳이다보니 사람들이 무척 많았지만, 약속시간에 딱 맞춰서 일행과 합류할 수 있었다. 이동한 곳은 로바다야끼. 모임의 주체가 다음카페에 있는 일본어 스터디 모임이다보니 도쿄 현지에 학업, 직장 등의 이유로 체제하고 있는 분들이 있어 찾아가게 되었는데, 역시 소문으로 들었던 결코 저렴하지 않은 가격의 압박이 있었지만 그럭저럭 해결이 가능한 금액이어서 즐겁게 먹고 놀 수 있었다.
일본적인 분의기의 가게에서 일본적인 술과 안주를 먹으며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내가 가장 어리다보니 인생 선배님들에게서 많은 조언을 듣고 얻을 수 있었다. 선배님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 식사는 뭔가 배울 수 있으면서 그 자리만으로 견문이 넓어지는 느낌이 들어 좋다. 로바다야끼에서 2시간 정도 맥주와 청주를 마시며 있다보니 종업원이 다가와 시간이 다 되었다며 연장할 거냐고 물어왔다. 금액적으로도 부담이 있고 해서 장소를 바꾸어 2차를 가는게 좋을 것 같아 다같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처음엔 가라오케를 갈까 했는데, 맥주로 입가심을 하는게 낫겠다는 의견에 따라 이자까야를 찾아갔다.
우리나라 호프집과 비슷한 분위기의 이자까에에서 츠케모노 등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셨는데,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서양인이 한국어를 알아듣고 아는 체를 해왔다. 부산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다는 그들은 채식주의자,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정도의 한국말만 할 줄 안다고 하면서 웃어왔는데, 서양인 남자 3명+일본인 여자 1명의 조합이 재밌으면서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잠시 그들과 영어, 한국어, 일본어로 몇 마디 나누고는 이내 우리 테이블 만의 세계로 빠져들어 이야기 꽃을 피우다, 한국보다 이르고 위험한 일본의 차시간에 따라 자리를 털었다.
시부야 역 앞에서 일행은 각자 숙소를 향해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졌는데, 히비야선을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었던 나는 시부야에서 야마노테선을 타면 한 번 갈아타야하는게 번거로워 시간도 있겠다, 히비야선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보기로 했다. 가다가 막히면 행인에게 물어봐야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출발한 시부야 밤거리 투어는, 내 생각과는 달리 다소 복잡한 도로 구성과 도깨비가 그려져있던 검은 티셔츠 복장의 180cm 험악한 인상의 남자라는 주인공 때문에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 길을 물어보려 말을 걸면 부랑인이라도 만난 듯 황급히 도망치는 사람들.. 으음... 다행히 늦은 퇴근을 하는 듯한 경계심 많은 아저씨 한 명이 길을 가르쳐 주어, 막차 시간을 거의 앞두고 아슬아슬하게 전철을 탈 수 있었다.
술을 잘 못하면서 분위기에 취해 맥주->청주->맥주 순서로 술을 마시고 40분 가까이 밤거리를 땀범벅이 되어 걸어다니고 나서 겨우 서늘한 전철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긴장이 풀리며 두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두통이 물러가길 기다리며 뒷목을 마사지 하다보니 문득 타케노즈카역에 도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단기간의 숙취와 그로 인한 비몽사몽이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좀 꼴사납긴 했지만 덕분에 숙취도 어느 정도 가라앉아 동생의 아파트에 돌아올 수 있었다. 바쁘고 더웠던 하루고, 이렇게 또 하루 끝나고 있었다. 남은 일본 체제기간은 이틀...
08_15 일본여행#7 도쿄 4일차-아키하바라
아키하바라라고 타이틀을 달긴 했지만, 휴가를 내주었던 동생이 생각보다 피로가 누적되어 있던 탓에 오전에는 동생의 휴식과 Wii체험으로 시간을 보냈다. 아침 자체를 늦게 시작한 것이 가장 컸지만. 점심을 먹고 해가 조금 식기를 기다려, 동생 내외와 함께 아키하바라로 이동하여 목적했던 건프라와 몇가지 아이템을 구매하고 한국에도 진출한 오코노미야키 후게츠에서 저녁을 먹었다.
구매한 것도 양이 제법 되었지만 느긋하게 구경했던 탓에 숙소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맥주를 한 잔하며 TV를 보는 것만으로 하루가 다 지나가 버린.. 그런 날이었다. 사진으로 남은 것도 후게츠에서의 오코노미야키 뿐. 그런데 이날도 돌이켜보면, 일본에선 충실하게 맥주를 열심히도 마셔댄 것 같다. 흠흠.
08_16 일본여행#8 도쿄 5일차-귀국
항상 일본여행 마지막 날은 아침부터 바쁘고, 마음이 급해서 충분히 즐기지 못한 듯한 느낌이 남은 기억이 있다. 이번엔 그러지 말자고 다짐을 하고, 약속을 잡아보려 몇군데 전화를 해보았지만 황금같은 토요일에 예정없이 기다려 줄 사람은 당연히도 없었다. 체류기간 내내 맑았던 날씨도 꾸물꾸물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결국 마지막으로 모스버거를 먹기로 하고 타케노즈카에 있는 모스버거를 찾아갔다.
동생이 살고 있는 타케노즈카는 자전거가 있으면 어지간한 곳에서 편의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많이 갖춰져 있는 곳이라 이런저런 음식점, 위락시설, 상점들이 다 있는 그런 곳이다. 모스버거에서 점심을 먹고, 북오프와 게오 등을 들러 몇가지 선물과 필요한 것들을 샀다.
모스버거를 나와서. 햇살이 쌍콤했더랬다.
구름과 하늘과 햇빛. 근데 좀 이따 비오더라...
마지막으로 들렀던 게오에서 상태좋은 대합주DX를 구매하고 나오니 기어이 비가 내리기 시작해, 싸구려 우산을 사들고 가방을 가지러 아파트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두고 온 것이 없는지 확인하여 가방을 챙기고, 동생 내외와 함께 하네다 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타케노즈카에서는 제법 거리가 되는 곳이었지만, 돌아가는 길도 동생 내외가 함께 돌아갈테니 조금은 덜 미안한 기분으로 동행할 수 있었다.
일본의 박카스 리보비탄. 사실 B'z 팬이라면 이게 아니지만서도..
뱅기를 타면 항상 처음에 보이는 구간 표시. 올땐 후쿠오카로 왔는데.
날개샷. 어떻게 된게 뱅기만 탔다하면 날개 옆이다. 흐음...
마지막으로 공항에서 기념품을 조금 사고, 나머지 잔돈은 동생에게 맡기고 나는 출국장으로, 동생 내외는 귀가길에 올랐다. 작년에는 혼자 돌아서는 동생의 뒷모습에 미안함을 느꼈었지만 이번에는 부러움을 느낀.. 그런 헤어짐이었다.
회사 입사 이래로 두 번의 주말을 모두 사용하여 장장 8일의 휴가를 가져본 적이 처음이다보니 그만큼 후유증도 많이 남았던 여행길이었지만, 이후 멀리 나들이를 나갈 일은 1년 이상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탓에 어떻게든 적응하자고 마음을 다잡았었더랬다. 그리고 정확히 1개월만에 또 일본에 가게 될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