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다니구치 지로(2004, 샘터)
다니구치 지로. 지금은 고인이 된 일본의 만화가로, 이 책이 국내에 정식발간되었던 2004년에는 '고독한 미식가'가 소개되기 전이라, 이 책은 그저 일본 극화풍 만화의 거장이 그린 걸작 단편..이라는 분위기로 소개되고 있다. 책의 페이지를 열면 작가와 작품에 대한 평가와 추천의 글이 서문으로 추가되어 있어서 이거 소설인가? 라는 생각을 잠깐 하게 하기도 하고.
두 아이와 아내라는 가정을 짊어진 1998년의 외벌이 가장인 주인공은, 삶에 지쳐 요즘말로 번아웃을 느끼는 중인 중년 남성이다. 어느날 출장지에서 무의식 중에 나고 자랐던 고향마을로 향하게 되고, 거기서 마침 그 날이 모친의 기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모친의 묘지 앞에 갔다가... 무려 타임슬립을 하게 되어 중학생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미래의 기억과 지성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은, 기억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소년시절의 과거를 다시 살게 되면서 본인의 기묘하고 우울한 가정사를 되짚어 보게 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2024년을 기준으로, 최근의 만화 작품이나 라이트 노벨 등의 작품들에서 타임슬립은 호쾌한 복수물이나 소위 말하는 사이다물이 되기 마련인데,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너무 잔잔하지 않은가... 싶을 정도로 주인공이 하는 행동이 파격적이거나 과거를 바꿔가거나 하지 않는다. 특히, 자신의 행동이 미래를 바꾸게 되는 것을 경계하는 부분과 또한 생각없이 미래를 바꿔버릴 수도 있는 언동을 저질러버린다거나 하는 모순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미래의 아이와 아내를 염려하거나 하는 부분은 확실히 삶의 무게를 짊어진 중년 남성의 자각이 분명히 있다는 느낌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리고 끝내 만나지 못했던 부친과 잠시 스쳐지나가게 된다거나, 과거에 했던 행동 덕분인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마지막 페이지의 사건이 주는 당돌한 결말은, 얼핏 미완으로 마무리된 작품이 아닌가? 하는 첫인상이 있지만 곱씹어 볼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여운이 가득한 결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미 고인이 된 작가이고, 작품이 그려진 시기를 생각해 보면 주인공의 부친이 한 행동에 납득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주인공의 행동과 주인공의 납득에는 아무래도 쉽게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 아무리 과거에서 새롭게 알게 된 모친과 외조모의 과거를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하지만, 과연 인간이 져야 할 책임과 희구하는 자유를 어떻게 정의내려야 할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울림이 있는 작품이었다. 요즘은 쉽게 만나보기 힘든 그림체와 여운이 남는 작품을 찾는 분에게 조심스럽게 추천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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