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의 해답 / 내 인생의 해답, Carol Bolt
어느 카페에서 차를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느라 빈 테이블에 앉았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는 오히려 지루했고, 유리로 된 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다소 삭막하다고 느껴질만큼 지루했다. 지루하디 지루한 짧은 시간을 견디는 것은,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은근히 괴롭다. 심심하고 지루한 시간을 괴롭다고 느끼는 것은 스마트폰 중독인 걸까 아닐까. 무슨 영문인지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성분이 가득한 카페를 휘 둘러보고, 뭔가 집중할 거리가 없나 찾아보니 내 등 뒤의 벽면에 가지런이 꽂혀있는 두 권의 양장본이 보였다. 그게, 여기 올려보는 '내 사랑의 해답' 과 '내 인생의 해답' 이다.
무거운 하드커버에 무지막지해 보이는 페이지가 흥미를 끌었고, 꼭 닮은 제목까지도 뭔가 흥미로워 책을 펼쳐보니... 이건 종이 낭비가 아닌가 싶어질 정도로 내용이 없었다. 수많은 페이지를 훌훌 넘겨보아도 도통 같은 내용. 왼쪽에는 각 책의 상징인 마크 (사랑의 경우 하트)가, 오른쪽에는 짧은 한 줄의 문장이 씌여있을 뿐이었다. 뭐 이런 책이 다있나 하고 페이지를 뒤적거리니, 책의 사용법이 씌여있는 페이지가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무작위 운세뽑기 같은 느낌이랄까..
사진으로 남겨둔 페이지를 보면 알겠지만, 대체로 저런 식의 문장이 다양하게 적혀있다. 페이지가 많다고 한 만큼, 수많은 문장들이 한 줄 씩 남겨져 있다. 사용법에 씌여진 것처럼 혼자서 진지하게 고민을 하며 짧은 한마디의 조언이 필요할 때에는, 가끔 생각을 한숨 거들어 줄 수 있는 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쿨병에 걸린 쿨병 환자들이라면 그냥 집어던지며 나무야 미안해..를 외칠지도 모르겠지만. 요샛말로는 F를 위한 책이고 T에게는 무의미한 책이...이라고 하면 맞으려나.
그렇게 사진을 찍고 페이지를 몇 장 넘기고 있으려니, 조금 전 받았던 영수증에 적혀있던 번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책을 책꽂이에 되돌리고, 커피를 받고 카페문을 열며 생각했다. 포스트 남겨야지,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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