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 색선희준 블로그

책 표지

2024년 10월 10일, 대한민국의 소설가 한강 작가님이 대한민국에서 두번째 노벨상이자 첫번째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아시아 최초 여성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쾌거에, 중국과 일본에서도 시기와 질투는 커녕 축하와 자부심을 공유하는 훈훈한 장면들이 노출되는 가운데..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접한 직후 직장 근처의 교보문고를 통하여 대표작 두 권을 구매하고자 하였다.

이 순진한 생각을 비웃듯이,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히 기존 재고는 품절사태를 빚었고, 나는 주문일로부터 약 1주의 시간이 흘러 이 '소년이 온다'를 먼저 손에 쥘 수 있었다. 늘 그렇듯 새 책을 받아들자마자 훌훌 읽어내려가 보려고 하였으나... 이것이 노벨상의 벽인가...라는 헛소리로는 담아낼 수 없는 무거움을 제1장 40페이지부터 읽을 수 있었다. 덕분에, 215페이지라는 그리 많지 않은 페이지를 읽어내는데, 거의 1주일이 걸려버렸다는 부끄러운 자백을 먼저 해둔다.

 - 이미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책 중의 한 권이 되어 버린 이 책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루고 있다. 
 - 1장의 주인공인 '동호'라는 소년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소년과 까깝거나 먼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각 장에서 풀어낸다.
 - 어렵게 느껴졌다. 요 10여년간 무라카미 하루키 선생의 신작들을 제외하면 텍스트를 거의 읽지 않았던 탓도 있었지만... 
 - 세밀하고 다소 건조하게 느껴지는 묘사들이 이어가는 담담한 묘사들은 인물과 사건을 정직하게 묘사하고 잘 와닿는다.
 - 그렇기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깊은 공감에서 이어지는 분노로 머리가 뜨거워지기도 한다.
 - 이미 수많은 대중매체가 다루기도 했고, 518과 관련된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들 생존해 있는 현재진형형인 사건이다보니... 그 사건의 무게와 편히 살다 간 학살자 전두환의 삶이 다시 한 번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떠오른다. 
 - SNS와 OTT를 넘어 쇼츠와 틱톡으로 버무려진 대중매체에 너무 익숙해져 읽는 힘이 약해진 탓일까. 이 책을 읽으며 느낀 무거움과 어려움은 어떤 의미일까.

오랫만에 지적 허영을 부려보고자 구매한 책이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다 알지만 잊고 있던 사건과 그 사건이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지에 대한 지난 세월에 대한 생각... 그리고 2024년 10월의 끝자락을 살아가고 있는 대한만국의 현실에 대한 생각을 하며... 모든 것이 여전히 이어져 있고, 여전히 묵묵히 견뎌내고 있는 삶들을 떠올려 본다. 딱히 견뎌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각없는 빚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지 않을까.

오랫만에 글의 힘만으로 감정이 뒤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은 묵직하고, 소설이라는 글이 가져야 할 힘을 온전히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권을 집어들어 보기 전에,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오늘 저녁은 야채수프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