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코 히구치 특별展 ~ 더 현대 서울, 2024.10.03~2025.01.22
늘 지나다니는 출근길에 붙어있던 이 전시회의 광고판을 보고, 언뜻 귀여워 보이는 고양이 그림이지만 뭔가 느낌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했던게 대충 두어달 전이었던 것 같다. 유코 히구치가 어떤 작가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림 하나하나에 들어있는 정보량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고, 일단 고양이가 테마인 것 같아서 아내와 함께 시간을 내어 방문해 본 전시회되겠다. 장소는 여의도의 명소가 된 '더 현대' 6층 전시관 ALT.1 이고, 성인 기준 입장료는 2만원. 다만, 5층의 행사장 입장 QR을 통해 예약 등록만 해도 할인을 받을 수 있고, 티켓 예매 사이트를 검색해 보면 최소 하루 전에 사전예약을 하면 할인을 받을 수도 있다.
평일임에도 사람이 많은 더 현대에 주차를 마치고 6층을 향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게 더 빠르긴 하지만, 자주 가는 공간은 아니었기에 구경삼아 올라가 일부러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지하 1층인가에 드래곤볼 팝업스토어가 있어서 잠깐 들르긴 했다. 좋은 아이쇼핑 공간이긴 하였으나 딱히 내 구매욕을 자극하지는.... 아무튼, 그렇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더 현대의 각 층을 구경하며 6층으로 올라가, 전시장을 찾아 티켓을 구매하고 입장해 보았다.
기본적으로 이 전시회는 촬영이 자유롭긴 하나, 하나의 작품을 단독으로 촬영하는 것은 금지이며 중간중간 스텝들이 두 장 이상의 작품이 한 화면에 담기도록 촬영해 달라는 요청을 해온다. 또한, QR 코드를 통해 H.포인트 앱을 설치하고 이어폰을 갖고 있다면, 오디오로 설명을 들을 수도 있는 것... 같았다. 몰랐는데, 중간부터 큐레이터가 각 전시 섹션에서 작품 세계와 작가에 대한 설명을 진행하길래 도중부터 합류하여 설명을 들으며 관람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작품들 자체가 흥미롭고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데, 설명과 함께 관람하면 더욱 잘 이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에 홀려서 이 전시를 관람하려고 생각했다면, 첫 섹션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작품세계를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나는 왜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첫 섹션에서 마주친 '에일리언 거트'라는 설명이 붙은 '거츠 성인' 작품을 보고 이 작가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하게 되었다. 이후 엄청난 양이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은, 기본적으로는 작가가 표현하고 그리고 싶은 캐릭터들이 가득한데, 그것이 이 작가가 일본인이며 일본의 서브컬쳐들에게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이 들게 하는 것이었다.
작가의 작품들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캐릭터 중 하나인 '구스타브 군'은 일견 더듬이가 달린 귀여운 고양이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양손은 뱀이고 다리는 문어같은 형태이다. 솜솜 뜯어보면 그로테스크하게 보일 수도 있고 그 나름 귀여워 보이기도 하는 복잡한 느낌의 캐릭터인데, 순진무구한 고양이 얼굴 덕분에 친근하게 다가오는 장점이 있다. 이 외에도 '잡화점'을 운영하는 고양이 '보리스'와, 구스타브 군 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히또쯔메 쨩(외눈박이쨩)', '상냥한 악어씨', 고양이 봉제인형이면서 고양이가 되고 싶은 '양꼬'와 양꼬와 가깝게 지내는 진짜 고양이 '냥꼬', '몸이 매우 긴 엄마 고양이' 등 나름 작가의 세계관을 지탱하는 '메인 캐릭터'들이 존재하며 작가의 그림책 작품들에도 등장하여 그 세계관을 형태와 이야기로 남기도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 '유코 히구치'는 단순히 캐릭터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라, 영화나 다른 예술가들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일본의 '키스 해링 전시회'의 홍보용으로 제작한 일러스트를 보면 '구스타브군'과 '몸이 매우 긴 고양이'라는 본인의 캐릭터를 활용하여 '키스 해링'의 대표작들을 오마쥬하고 있는데, 일반인의 눈으로 봐도 매우 재미있는 센스를 보여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애니메이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의 영화 포스터를 자신만의 해석으로 다시 그린 포스터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는 섹션도 준비되어 있어서 이 작가가 영화 또한 매우 사랑한다는 사실과 그 재해석을 통해서 본인의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한 편, 전시 종반에 다다르면 위와 같은 문구가 벽에 씌여있는 것을 보게 된다. 확실히, 고양이의 하반신이 문어이고 양팔이 뱀인 캐릭터가 매우 자주 등장하고 있다던가, 인간 소녀의 사랑을 받는 악어(가죽이나 근육이 매우 리얼하다)라던가, 여기저기 수없이 등장하는 안구, 심장이나 내장이 드러나있는 것 그 자체가 캐릭터가 되어 있는 등 사람에 따라서는 이 작가의 작품들은 얼핏 보이는 귀여운 고양이의 얼굴이 다가 아니라 사실은 어둡고 기괴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전시되어 있는 많은 작품들이, 많은 정보량 탓에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게 뭐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나는 이러한 작가의 세계관이나 캐릭터들이 일본의 서브컬쳐(울트라맨이라던가)의 영향이 있는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반박시 제가 다 틀립니다 네네.
위에 영화포스터의 재해석 섹션도 있지만 이 외에도 수채화 물감의 각 색에 따른 동물이나 정물을 그려넣은 작은 일러스트 모음집이라던가, '바벨탑' 이야기에 작가의 캐릭터들을 집어넣은 '바벨' 작품집이라던가, 짐승과 새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박쥐' 동화를 다룬 이야기라던가... 다양한 작품들이 수많은 정보량을 담고 전시회장에 가득차 있었다. 작품들 중에는 상당한 양의 텍스트가 들어있는 작품들이 다수 있었는데, 일본어가 대다수이다보니 해석이 안되어 그 작품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실례로, 중간에 '상냥한 악어씨'가 '구스타브 군'에게 "너는 고양이인거야, 뱀인거야, 문어인거야?" 라고 물어보자 구스타브 군이 "고양이일거야. 아마"라고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일러스트가 있었는데, 모두 일본어로만 적혀있어서 제대로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었다. 이걸 모두 번역하여 함께 전시하기에는 작품의 양과 각 작품이 담고 있는 정보량이 어마어마하기에 주최측으로서도 쉽지 않았을거라는 생각도 들고.
늘 그렇듯, 전시회 마지막에는 굿즈샵도 있고 작가의 대표적인 캐릭터들이 들어있는 미니 피규어 들도 있었다. 도록이나 화집도 약간은 탐이 났지만, 크게 뭘 지르지는 않고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여기 올려놓은 사진들의 백배 이상의 작품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독특하고 귀여우면서 때로는 그로테스크한 작품들을 찬찬히 둘러보고 싶은 분들은 여의도를 찾아보심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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