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 색선희준 블로그

남자의 아침밥은 푸딩!!...이게 전부는 아니었지만.

전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늦게 잠들었지만, 직장인의 신체시계는 주말에도 작동하는 법. 조금 이른 기상과 함께 인터넷을 조금 구경하다가, 이윽고 일어난 동생 내외와 함께 가볍게 아침을 먹었다.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사이타마에 살고있는 지인과 합류하기 위해 동생의 차에 몸을 실었다. 빗속을 조금 달려 지인이 알려준 장소에 도착해 오랫만...일 뻔 했지만 지인의 한국방문 덕에 1개월도 안되어 다시 만난 반가움을 나눴다. 이 날은 지인의 차로 바꿔타고 도쿄 아키하바라로 출발할 예정이었는데, 그 전에 사이타마의 명물 중고 매장을 잠시 들러보기로 했다.

 - 撃鉄(사이타마 소카시)

내가 좋아했던 패트리어트 스타일
팀장님 스타일이었던 AK
핸드건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撃鉄(격철, 게키데쯔) 은 보통 공이치기 또는 해머라고 부르는 총기의 부위를 말한다. 이 중고샵은 기본적으로 BB탄 총, 쉽게 말해 장난감 총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으로 사이타마나 치바 등지에 위치한 일본의 BB탄 서바이벌 플레이어들을 위한 매장이라고 하겠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막 오픈한 참이었는데, 1층 입구에서부터 잊고 있던 BB탄 총에 대한 욕망을 불사르는 아이템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벽에 전시되어 있는 제품들을 향한 군침을 속으로만 흘리며 2층으로 올라가 보니 2층은 피규어, 프라모델 등을 포함한 대량의 중고 물품이 가득한 곳이었다. BB탄 총은 나름 가격이 좋은 편인 듯 하지만, 중고 피규어, 프라모델 쪽은 그야말로 리셀샵이라는 느낌이라 할 수 있겠다. 사진을 올려두지는 않겠지만, 가격보다는 요즘 쉽게 보이지 않는 중고 프라모델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 쯤 들러볼만한 곳이 아닌가 싶었다.

 - 쓰루가야(사이타마 소카시)

슈퍼컴보이용 게임들
수퍼겜보이용 팩들
네오지오와 PC엔진들
나름 레어한 게임들

레트로게임을 비롯한 서브컬쳐를 좋아한다면 국내에서도 나름 유명한 쓰루가야. 위의 격철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마주보고 있으며, 격철보다는 오픈시간이 조금 더 늦는 느낌이었다. 지방 소도시다보니 물건이 그리 많지는 않은가... 라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지난 번 후쿠오카 쓰루가야도 매물이 아주 넉넉하다는 느낌이 없었던 걸 생각하면 이 정도면 대단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그리운 게임들, 이름만 들어봤던 게임들, 상당히 합리적인 가격에 진열되어 있던 PS1~3 중고 게임들을 둘러보다 보니, 간단히 먹은 아침이 제공한 칼로리가 이미 다 소진된 느낌이 들어 점심도 먹고 오후 일정도 시작할 겸 아키하바라로 향했다. 사실 아키하바라를 굉장히 오랫만에 가는지라, 어디를 갈까.. 하다가 현지에 거주하는 일행의 추천으로 아키하바라 UDX 3층을 목표로 이동했다.

 - 경양식당 슈라쿠 (아키하바라 UDX)

내가 주문한 것은 이거
샐러드와 수프
메뉴 실물

생각해보면, 아키하바라를 그렇게 자주 왔던 것도 아니지만.. 왔어도 햄버거나 카레, 라멘 등 비교적 저렴한 곳을 자주 갔던 것 같다. ...아키바가 였나 하는 버거는 좀 고급진 느낌이었지만.. 그거 아직 있나하는 생각이 다녀온지 한참지나 기록을 남기면서 생각나는 걸 보면 아키하바라는 맥도날드나 고고카레가 전부였던가 싶기도 하고. 오로지 도보와 대중교통만을 생각하던 시절을 지나, 현지에 거주하는 일행 덕분에 차량으로 이동하는 호사를 누리며 줄을 좀 덜서는 식당을 골라 들어간 곳이 이 슈라쿠. 일행들은 다른 메뉴들을 시켰는데, 나는 이번에 최대한 한정판 위주로 먹어보자는 관광객 마인드였던 관계로 100주년 기념메뉴라는 '会い盛り丼아이모리동'을 주문해 보았다. 위 사진의 샐러드는 별도로 주문한 것이지만, 야채수프는 이 메뉴에 포함되어 있던 것. 튀김류에 사용할 소스가 따로 나와서 진한 소스에 밥 맛이 침식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점이 좋았고, 튀김의 재료들이 아주 고급지진 않지만 어딘가 한국의 오래된 반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 쓰루가야~간판만 (아키하바라) / 아니메이트 트레이더스(아키하바라)

이쪽은 프라모델 전문관
사이보그 009....
이 컨디션이 이런 가격...

일행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점심을 마치고, 내 최대의 목적 중 하나였던 GIGO 레트로관을 향해 이동하다 또 잠시 아이쇼핑을 해보기로 했다. 내가 기억하는 아키하바라의 매장 배치와는 뭔가 좀 많이 달라져 있었는데, 오히려 내 입장에서 이동하기는 편했다. UDX 를 나와 1층 커피샵에서 음료를 하나씩 물고, 쓰루가야를 지나쳐 아니메이트트레이더스를 잠시 들렀다. 한국에서의 아니메이트는 중고 리셀 매장이라기보다는 서브컬쳐 서점 또는 팬시샵이라는 느낌이 강한데, 역시 아키바의 아니메이트는 내가 기억하는 그 아니메이트였다. 이런저런 레트로게임들을 뒤적거리는 것만으로도 한나절은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나름 귀해 보이는 게임들을 좀 구경하다... 구매를 잊고 있었던 B'z LIVE GYM 2023~STARS 의 블루레이 세트를 발견하고 결국 하나 지르고 말았다. 과연 틀어보긴 할 것인가 싶지만 지름이 뭐 필요한 걸 사는 행위던가. 갖고 싶은 걸 사는 것이지.

 - GIGO 3호관 6층 레트로관

배틀기어3
스커드 레이스
데이토나 USA2
버추어 레이싱
레이브 레이서
아웃러너즈

그리고 조금 더 걸어, GIGO 3호관에 입장할 수 있었다. 요즘 오락실이 다 그렇듯, 1층은 경품 게임으로 가득했고 에스컬레이터로 위로 이동하고 이동해서 현세대 게임들을 지나 6층에 도달해보니... 여기가 내가 기억하는 그 오락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추어레이싱-데이토나2-스커드 레이스의 실기는 죄다 1플레이씩 즐겨보았고, 남코의 레이브 레이서와 타이토의 배틀기어3는 코인을 넣어볼까 망설이기만 하다가 한참 데모를 구경했다. 아웃러너즈는 마찬가지고... 사진에 담지 못한 레트로 레이싱게임들이 더 많이 있었고, 다음 사진들과 같은 건슈팅, 체감형 게임기, 그리고 아스트로 시티들도 잔뜩있는... 내 청춘의 오락실이 거기에 있었다.

마리오 브라더스
동키콩
상하이~만리장성

나보다는 좀 더 형님 세대가 제대로 기억하실 테이블형 게임. 마리오 브라더스에 동키콩이라니....

연신내에 있었던 것 같은 핀볼
대방동에서 했던 것 같은 크택1
내 기억속의 그 애프터버너
실물 처음보는 것 같은 스페이스 해리어
남코의 인디500
타크라는 1,2,3까지 있었다
고르고 13. 옆에는 사일런트 스코프도 있었다.
애일리언3... 이거 봤던 같기도...
T2 심판의날. 불광동 버스터미널에서 본거 같은데
닌자 어썰트 실기. 오랫만이야!

체감형, 건슈팅 기기들도 잔뜩 있었는데, 2~30대로 보이는 서양 친구들이 잔뜩 달라붙어서 즐기고 있었다. 사진엔 없지만, 하오데1을 플레이했는데... 1스테이지 보스까지 가지도 못하고 죽어버렸다. 오른쪽 구석 영점이 엉망이었어!!!

비트매니아 컴플믹스2... 옆에는 비트매니아3도 있었다.
2-2'-터보-슈퍼-X 까지 5대의 실기들
2에 도전!
쌍가트에서 죽어버렸다...
에이리어 88 실기!!
버철온 미니기체. 연신내에 들어왔던 건 이런 느낌이었지만 스틱이 영...
버철온 포스 실기... 오라탱도 있었다.
3가 20년째 시급합니다... CVS2

어둡고 흐릿한 조명, 이 구석은 건슈팅, 저 구석은 리듬액션, 센터를 차지한 레이싱, 즐비한 아스트로시티에 설치된 스파2 5연작에 제로2, CVS2 까지.. 이 곳은 그냥 내 청춘이, 내 사랑이, 내 영혼이 자리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정비에 신경을 쓰는 일본 오락실이긴 해도 오래된 기기들이라 브라운관 화면의 상태들은 기체마다 제각각이었고, 건슈팅 들은 영점이 칼같이 맞아있다고 보기 힘들었고 기체들의 버튼과 레버는 상당한 사용감이긴 했지만... 다들 그럭저럭 즐길만 하다는, 그 시절의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었다. 은근히 동전을 먹는 기기들도 있었는데, 다행히 스탭들이 잘 대처해 주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2~30대 서양인들이 스파2 시리즈에 열광하는 건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건슈팅이야 서양인들의 삶이라고는 하더라도...

마음은 여기서 하루 종일이라도 있고 싶었지만, 나 하나 때문에 발걸음을 해준 일행들도 있고 해서 대략 1시간 가량 추억에 젖어 시간을 보내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나중에 1시간 정도 있었지? 라고 하니 다들 뜨악한 표정으로 쳐다보던걸 보면 좀 더 있었나 싶기도 하지만. 그런게 뭐 중요한가. 데헷.

 

[도쿄] 241005, 2일차-2 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