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3호선 전철역, 광화문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고궁, 외국인이 많이 온다, 근처에 청와대가 있다, 업무상 종종 지나만 가고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정도가 떠오르는 곳. 오래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일제시대 중앙청 건물을 활용해서 쓰던 시절에 들어가보고.. 거의 가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가까운 곳에 있어서 더 가 볼 생각을 안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경복궁에 이러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어, 평일 하루 시간을 내어 들러보았다.
시작 10분 전에는 도착해 달라고 하였는데, 경복궁을 관람목적으로는 사실상 처음 가보는데다 공사와 카카오지도를 너무 믿는 실수를 해버리는 바람에 시작 1분 전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더워지기 시작한 5월이라, 자리를 안내받아 앉아서는 넓어진 이마의 땀을 연신 훔치며 차를 기다렸다. 위 사진과 같은 자리에 낮아, 예약할 때 주문한 대추인절미병 세트를 받아들고 옆에 준비된 부채를 부치며 차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저 상과 그릇과 포크대신인 꼬챙이(...)와 차이름표의 명칭도 모르고 있는 멍청한 아저씨라는 걸 뒤늦게 깨닫고 있다...
사실 이제껏, 경복궁이라는 장소는 그냥 조선시대 왕이 살던 궁전을 보존, 재현한 곳이라고만 생각했더랬다. 그리고 외국인들이 한복을 빌려입고 K-드라마에서 본 장소들에서 관광객 기분을 내는 그런 장소 정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문화재를 보존하고 그 문화재를 관람하면서 당시의 어떠한 문화체험을 나름 고급지고 나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컨텐츠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러한 형태로 제공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위 사진의 팜플렛에도 나와있지만, 이 생과방 컨텐츠는 조선시대 왕과 왕비가 즐기던 후식과 차를 재현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해보면, 꽤나 고급진 컨텐츠가 아닐까. 예약하는데 초인적인 근성과 운이 따라야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사미다음은 이 곳의 시그니쳐라고 해서 도전해 보았는데, 전설의 명의 허준 선생이 쓴 동의보감에도 올라있는 차...라던가. 아무튼 좁은 상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조심 차를 우리고, 따뜻한 차를 따라서 음미해 보았다. 다른 분들의 리뷰에는 한약 맛이 난다고 했는데, 그런 향이 살짝 나고 그저 구수한 전통차 같은 느낌이었다. 뜨거운 물로 우려낸 차 이지만, 날이 더운 탓에 추가로 준비해 준 얼음 잔을 활용해서 중간부터는 시원하게 마셔보았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한과들은 대체로 달달했지만, 새콤한 맛의 과자도 있었고 구수한 차와 잘 어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생과방은 70분짜리 컨텐츠로, 사실 차가 차려지고 난 후에는 딱히 직원들이 뭘 하는 것도 없고 그저 고즈넉한 고궁의 방 한 켠에 앉아 차와 과자를 즐기는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에어컨도 없는 고궁의 방에서 한과와 전통차를 즐기는 한가로운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매일 업무와 눈싸움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소중하고 특별한 경험 그 자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작은 책을 한 권 가져가, 차와 한과를 조금씩 먹고 마시면서 한바탕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전통악기로 편곡된 민요가 흐르는 조용한 궁전 작은 방에서의 짧은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져서 잠시 손전화도 꺼놓고 그 정취를 느껴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주어진 시간을 다 보내고, 다소 느즈막히 신을 신고 방을 뒤로 했다. 경복궁 안에는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과 한국인 관광객들이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날은 맑고.. 다소 더웠다. 입장권을 끊고 들어와야 했던지라 경복궁을 좀 둘러볼까도 싶었지만, 잠시 망중한을 즐겼던 만큼 다시 또 바쁘게 걸어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지라 잰 걸음으로 광화문을 나섰다. 그렇게, 특별한 평일 하루의 한 꼭지를 이렇게 보냈다...는, 그런 이야기. 다음에 또 기회가...있으려나.
-생과방 다녀오며 알아두면 좋겠다 싶은 것들
= 광화문으로 들어가거나 궁 안으로 가지 말고 경복궁 오른쪽 큰길을 쭉 올라가, 국립민속박물관 입구로 가는게 편하다.
= 마찬가지로 경복궁 입장권도 여기서 끊을 수 있다. 미리 끊는다고 광화문 근처에서 줄서지 말자. (2024년 5월 기준)
= 10분전에는 도착하도록 해달라고 되어 있지만, 1분전에 도착해도 입장은 가능하다. 입장은...
= 본인 이름으로 예약하지 않은 경우, 예약자의 신분증(!)과 가족관계증명서를 반드시 챙겨야 한다. 안그러면...
= 예약이 매우 힘들지만, 평일 낮시간에 의외로 취소표가 발생할 수 있다. 혼자 간다면 가능성이 없진 않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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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문제와 재고문제 등 여러가지 이유, 소위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하여 당연히 일반판일 것 같은 제품들이 온라인 예약 한정으로 돌아가는 2024년 현재. 최근에 조립하고 올렸던 '스트라이크 대거' 의 설정상 후속기체이자 실제로는 원본 재탕에 해당하는... 설명하기는 길지만 알아봤자 별거 없는, 아무튼 색놀이 배리에이션 킷으로 발매된 '다크 대거L'을 만들어 보았다. 하는 김에 일반판으로 나왔던 대거L도 같이...
설정 상 배리에이션 기체다보니, 부품 구성이 거의 완전히 동일하다. 부품 몇 개로 조립되는 다크 대거L의 바주카가 추가로 들어있는 것이 차이점이며, 그 외에는 사출색을 제외하면 소체와 방패, 소형 라이플은 완전히 동일하다. 그리고, 일반판이었던 대거L의 구성을 변경해서 스트라이크 대거도 만들어졌고.
둘다 한정판으로 나온 두 기체. 설정상 원본에 해당하는 스트라이크 대거와는 차이가 꽤 있는데, 스트라이크 대거가 스트라이크 건담의 간략판이라면 대거L은 스트라이크 대거의 개량형이라는 느낌이.. 있나? 아무튼, 이런 양산형 기체들을 한정판으로 내서 대량 조립을 어렵게 하는 것은 언제나 반대한다...
SEED 세계관의 지구연합군 양산형 기체는 이 뒤로 정말 멋진 윈담이 주로 등장하게 되는데, 윈담도 재판이 잘 안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앙상블 윈담이 있으니 굳이 신경 안써도 되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 2024년 상반기에 극장 개봉으로 인기몰이를 했던 SEED FREEDOM 덕분에 차올랐던 SEED 뽕도 슬슬 빠져가는지라 추가적으로 SEED 기체를 만들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앙상블로 전개될 SEED FREEDOM 라인업은 조금 더 나오지 않으려나. 아무튼, HG 킷 이야기를 앙상블 이야기로 마무리한다는 것은 내 관심사가 이제는 그렇다는.. 뭐 그런 별거 없다는 이야기.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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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진 Live Concert THE BEGINNING from 1977 to 2004, 240526
가수 정여진님은 2027년에 무려 대뷔 50주년을 맞이하는 굉장한 경력을 가진 가수이다. 2024년 현재 50대의 나이이지만, 어렸을 때 전자인간 337 (1977년)로 애니송에 데뷔하여, 수많은 극장판 애니메이션과 TV판 애니메이션 관련 곡을 부르고 20대에 다시 CM용 음악, 애니메이션, 영화음악 등으로 활동을 이어와 지금에 이른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Gq_JGobAYIQ
개인적으로는 2020년 JTBC 에서 방영된 '슈가맨'에서 등장하신 모습을 보고 그 모든 애니송이 이 분 작품이라고? 그 CM송도? 라고 놀라고 감동하고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하여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고 공연을 하면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하다가... COVID-19 상황에 놓이면서 온라인 콘서트로 공연하시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 2024년 5월 26일, 위 영상의 셋리스트로 함께하는 공연을 보고 왔다...는 이야기.
개인적으로는, '슈퍼~시리즈'를 아마도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보러 갔었는데, 예상보다 관객층이 훨씬 젊은 탓인지 호응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A열 가운데 쯤에서 혼자 감격하며 립싱크로 따라부르면서 행복했는데...
그리고 첫번째 게스트로 정여진 님의 올케이자 공연 연출에 많은 역할을 하신 애니송 가수 '나오미'님이 '잔혹한 천사의 테제'를 1절 일어 2절 한국어로 부르고, 이어 '수성의 마녀' 엔딩곡 한국어 버전을 열창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기도 했다. 두번째 게스트인 TULA 님의 드래곤볼, 디지몬 노래들은 젊은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이 있었고...
이 공연은 '정여진'이라는 가수의 일생(...)을 더듬어 가는 느낌의 콘서트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이먹은 덕후다보니, 초반 7~80년대 곡들과 후반 90~2000년대 곡들이 두루 귀에 들어오는 감동적인 공연이었다... 라고 말할 수 있겠다. 같은 날 오후 3시, 7시 2번 공연을 하는 스케쥴이었는데, 나는 3시 공연으로 봤었고, 정여진님의 보컬과 세션분들의 연주력 모두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어릴 적 카세트테이프로 수백번은 들었던 똘이장군, 슈퍼마징가3, 슈퍼특급마징가7 같은 만화영화 주제가를 훌륭한 세션의 밴드연주와 원곡자의 원숙한 보컬로 다시 들어볼 수 있는 꿈같은 기회였다보니 만족하지 않을 수가 없는 공연이었달까. 공연실황 브루-레이나 음원을 판매하시면 꼭 구매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한.. 그런 공연이었다. 앞으로도 많이 활동하시는 모습과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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