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2013.3.25

이야기2013.03.25 21:22
 3월이 안녕을 고할 준비를 하는 월요일을 마치고, 익숙한 버스를 타고 익숙한 거리에 내린다. 익숙한 건널목을 건너다 문득 오른쪽을 쳐다보니, 하늘이 아직 어스름하다. 해가 막 진, 그래서 어둠이 아직 약하지만 확실하게 하늘을 물들인 그런 하늘이다. 반사적으로 시계를 보니, 해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실감이 들기 시작한다. 공기는 여전히 서늘하지만, 봄은 이렇게 하늘에 조금씩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있다.

 걸음을 재촉하며 익숙한 커브를 돌며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자, 거의 다 찬건지 막 이지러지기 시작한 건지 헷갈리는 달이 걸려있다. 어느 쪽이건 만월은 아닌 그 부른 달은, 또 하나의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감을 나타낸다.이렇게 또 하나의 달이 흘러가고 새로운 달이 오고, 여전히 추운 이 공기도 어느 순간 더위를 머금고 습하게 나를 감싸리라.

 이제는 친구의 부모님 중 한 분이 병환으로 돌아가셔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가고, 결혼을 헀는가 안했는가는 단순한 안부와 그 순간의 단순한 화제를 넘은 의미를 품고 있고, 오랫만에 뵌 어른들의 얼굴에는 세월이 감출길 없이 나타나 있고,오랫만에 만난 기억 속의 배경들도 그 빛이 바래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이렇게,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은 주위에 널려있다. 오직 나만이, 10년 전이라는 단어에서 90년대를 떠올리는 타임립을 일으키고 있을 뿐.

 내가 살아가는 일상은 매우 소박하고 평범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의미로 매우 특이하고 우스운 일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200년 쯤 뒤에도 지금과 같은 네트워크 상의 기록들이 온갖 형태의 로그로 남아 전해진다면, 200년 뒤에 현대의 덕템을 연구하는 학생들이 이 블로그의 글들을 보며 뭔가 별볼일 없는 레포트의 자료로 쓰기 위해 드래그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이런 어중지간한 자료는 넷상의 쓰레기라며 혀를 찰지도 모를 일이다.

 날은 춥고, 배는 고프고, 머리는 잠이 쌓여 울리지만, 그 일상안에서 무엇이 되었건 기쁨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걸로 사람은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도, 분명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세월의 흐름을 온 몸으로, 온 정신으로 느끼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되새기며 원하는 기쁨을 찾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새삼, 아이패드와 브루-투스 키보드의 존재가 고마워지는 저녁이다. 노래가 있고, 인터넷이 있고, 덕질이 있고, 사람이 있어 피곤한 가운데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눈은 시계를 쫓고, 손은 키보드를 달리고, 머리는 지갑속의 잔액을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언젠가는 맞이할 기쁨을 기다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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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

  • eihabu 2013.03.26 12:55 신고

    이런 어중지간한 자료는 넷상의 쓰레기...쯧쯧..ㅋ
    ...
    는 뻥이고, 나이먹어가면서 여러가지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