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 색선희준 블로그

입장 티켓... 구깃구깃;;

1. 90년대 초반, 드래곤볼로 인기몰이를 하던 '아이큐 점프'의 아성에 도전하는 또 다른 만화잡지가 '소년 챔프'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더랬다. 당시  '삼삼아이즈(사잔아이즈)'를 연재하면서 인기몰이를 시작했는데 한동안은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이명진)'이 큰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곧 '슬램덩크'의 붐이 시작되었더랬다. 

 

2. 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리복의 SHAQ 와 나이키의 에어조던이 큰 인기를 끌었었다. 단순한 패션이나 NBA의 붐의 영향만이 아니라, 슬램덩크로 인한 농구 붐이 일면서 농구와 관련된 패션아이템이라는 후광과 함께 폭발적인 인기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선수는 마이클 조던을 좋아했지만, 빨간색이 많았던 에어조던 보다는 메탈릭한 파란색이 강렬했던 SHAQ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었다. 물론 당시 내가 가질 수는 없는 가격이었기에, 그냥 리복의 그나마 살 수 있는 가격의 반농구화로 만족했었지만.

 

3. 예나지금이나 공놀이는 썩 좋아하지 않고, 회사 차원에서 시작했던 골프는 돈을 발라도 늘지 않는 저주받은 몸뚱이에 절망하고 투자한 비용이 적지 않음에도 포기하는 수순을 밟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이런 내 평생, 실제 시합을 하면서 힘들지만 즐겁고, 못하지만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공놀이는 농구와 볼링 뿐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농구를 했던 건 아마 군생활 때가 마지막이지 않은가 싶긴 하지만. 

 

4. 나는 슬램덩크를 보면서 누구를 좋아했더라.. 하고 생각해보면 딱히 누구 한 사람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뾰족머리 윤대협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잘생긴 돌아온 탕아 정대만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상양의 원맨아미 김수겸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마지막에 무를 깎으며 채치수를 각성시키던 변덕규가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백호를 지지해주는 양호열 군단도 좋았고, 쌀가게 자전거 같은걸 타고 졸면서 등교하던 서태웅도 좋았고, 두고온다는 감각은 몰랐지만 레이업은 잘하던 소연이도 좋았고 두꺼운 입술이나 인상이 어딘가 채치수의 숨겨둔 여동생 같았던 한나도 좋았고 양호열 군단이 어떻게 모두 탔는지 궁금한 바이크도 좋았고 패스 미스를 자책하며 머리를 밀고 등장한 백호도 정말 좋았다.

누구 한 사람이 좋았다고는 못하겠지만 언빌리버블 하게 모두를 체크하던 경태처럼, 모두를 뒤에서 지지하며 바라보고 때로는 함께 하던 준호처럼, 슬램덩크의 마지막화까지 매주 소년챔프를 사보고 챔프코믹스를 사 읽으면서 북산고의 여정을 함께 했더랬다.

 

5. 당시에는 학생이었던지라... 40줄이 된 지금도 종종 새로운 유행어를 따라하긴 하지만... 능남과의 교류전에 채치수와 변덕규가 악수하면서 '잘 부탁한다' - '내가 이긴다' - '건방진 소리...' 라는 대사를 목소리 깔고 따라하면서 대전게임을 플레이하거나,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일본만화의 폐혜를 고발하던 MBC의 시사 다큐멘터리 광고영상에 흐르던 '슬래앰 덩크를 모르면~~ 화제에 끼일 수 조차 없다는데!!!'라는 대사를 따라하며 깔깔대기도 했었지.

 

6. 보고는 싶다고 생각했지만, 슬램덩크 신극장판...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이제서야 자막판으로 보게 되었다. 힙합이 아닌 강렬한 락음악이 쓰인, 상당히 절제된 느낌으로 전개되는 산왕전을 배경으로 우리가 아는 각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이 회상처럼 삽입되는 한 편 원작에서 나온 적 없는 송태섭=미야기 료타=료쨩의 가족사와 성장을 그려내는 점이 상영 시간 내내 단 1초의 지루함없이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푹 빠져서 즐길 수 있었다. 

경기 결과와 전개를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정대만의 페이크 3점슛이 작렬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전개를 잘 알고 있기에 강백호가 볼을 살리기 위해 몸을 던지는 장면에서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았고, 마지막 하이파이브에서는 20년전 만화책 전면으로 뿜어져나오던 박력과 감동을 다시 한 번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7. 공놀이에 재능이 없는지라 어렸을 때도 드리블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고, 그냥 서서 팔을 휘적거리거나 성공률 낮은 슛이 어쩌다 들어가면 그 2점으로도 너무나 즐거웠던... 그리고 아마 실제로 다시 뛸 일 없는 농구였지만, 작은 상영관이었음에도 강렬하게 극장 안에 울려퍼지던 송태섭의 드리블 소리, 그 농구공이 땅을 차고 튀어오르는 그 소리가 귀에 꽂힐 때마다 농구공을 하나 사서 안양천이라도 가볼까 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더랬다. 

...더빙판은 극장가서 볼까, OTT에 들어오면 결재해서 볼까. 아무튼, 슬램덩크 만화책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꼭 보기를 추천합니다. 아마 제가 너무 늦게 보고서 뒤늦게 호들갑을 떠는 거겠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