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 색선희준 블로그

이 글을 적으면서 결혼 즈음에 뭔가 블로그에 올렸나... 하고 찾아봤더니, 의외로 내가 결혼 즈음의 이야기는 블로그에 올려두지를 않았더라. 아마도 블로그에는 개인사를 잘 올리지 않으려고 그랬던 것 같긴 하지만, 대충 10년이 지난 지금은 이렇게 포스트를 적어보려고 키보드를 달리고 있다. 아무튼, 저 결혼한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결혼하면 정말 행복해집니다. 결혼하세요.

1. 출발

아내가 주문한 드라이플라워
뱅기 탔으면 날개샷
제주로 날아가자
짐을 찾다가 문득
짐을 찾고서 문득

언젠가부터, 여행을 준비하면서 막 설레고 기대되고.. 그런 기분은 잘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전적으로 아내가 모든 계획을 짜고, 나는 그 계획을 지지하고 실행하는 역할을 하기로 한 관계로 더욱 그랬던 것 같기도 하지만... 오랫만에 타보는 국내선 비행기에 오르고부터 아.. 여행가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언제나 가성비에 밀려서 내 안에서 탈락되었던 대한민국 최대의 관광지, 제주.

폭스바겐의 제타 1.4를 빌렸다.

제주에 도착해서 차량을 렌트했는데, 렌트를 할 때는 언제나 나만의 기준인 작은 차를 골랐다. 운전하기 편하고, 기름을 덜 먹으며, 주차하기도 편하다는게 그 이유다. 이번에는 내 현실적인 드림카 였던 폭스바겐의 파사트...가 아니라, 그것보다는 작은 제타. ...독어로 읽으면 예타려냐. 무선으로 애플 카 플레이가 연결되는 건 처음 해본 경험이라 신기했고, 무선충전도 지원되는 것은 좋았지만 뭔가 처음 폰을 올려놓을 때 잘 올려놓아야 한다는 느낌을 받긴 했다. 차량 자체는 대체로 만족했지만, 사이드미러가 둘 다 완전 수동이라는 점과, 운전석 측 광각 거울은 마지막까지 적응이 안되어서 주차하는게 참 난감했다..는 감상. 그 외에는 운전하기 편한 좋은 차..였지만 역시 광각 사이드 미러는... 음.

2. 중식. 청요리 말고 점심.

메뉴판을 살짝
가격대는 납득할만한 수준
기본세팅.. 고사리는 제주에서 자주 먹었다.
고기는 언제나 옳다

아내가 선택한 중식은 가볍게도 흑돼지. 위치는 공항에서 멀지 않은 시내였는데, 비행으로 지친 위장을 달래기 위해서는 상당히 적절한 거리..라고 할 수 있겠다. 초벌구이하여 나온 흑돼지를 다시 구워서 콩나물&고사리를 베이스로 해서 야채와 먹는... 그야말로 한식. 웹서핑을 통해 얻은 정보 덕분에 선정한 식당이었는데, 우리가 마수걸이를 했고,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불황이라 그런것인가, 이 식당이 원래 그런 것인가...는 알 수 없지만, 흑돼지에 추가로 시킨 김치찌개와 물냉면도 대체로 맛있었다. 꽤나 만족하며 먹었던 관계로,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는 항상 북적대는 식당임에도 우리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3. 애월 해안도로~한담산책로

이동하다 말모양 등대가 보여서
검은 현무암 해변은 지금 봐도 놀랍다
차선이 하나뿐인 도로가 많았다.
목적지 도착...
한담공원으로 이동하다가 어느 해변에서 잠시 파도를 촬영해보았다.

배를 채웠으니 본격적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제주도 초행이다보니, 개인적인 로망 중 하나인 해안도로 질주와 제주 일주...를 꿈꿨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곧 깨닫게 되었다. 네비게이션을 따라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현대 운전자에게 있어, 목적지를 입력해 놓고 지도와 지형, 이정표를 참고하여 내가 보고 싶은 해안을 따라 진로를 수정하며 달리는 것이 꽤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우수한 파티마..가 아니라 아내님의 인도와 익숙해짐은 언제나 사람을 옳은 길로 이끄는 법. 

한담산책로를 내려가는 길
이게 정식 명칭이려나
상당히 특이한.. 연못? 같은 느낌
어디를 가나 물이 참 깨끗했다.

제주는 섬이라, 나같은 육지 촌놈들에게는 바다를 실컷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점심을 예상 이상으로 배불리 먹었으니 차와 간식을 먹기 위해서는 배를 좀 꺼트려야 할 필요가 있던지라 산책로를 따라 바다와 경치를 구경하기로 했다. 이 날 일기예보에는 비가 올 것이라는 소식이 있었지만, 운 좋게도 여행 내내 비는 오지 않았고 구름이 조금씩 걷히는 느낌마저 들었다. 덕분에, 느긋하게 경치를 구경하고 산책로를 따라 크게 한 바퀴 돌 수 있었다. 이후 내내 느낀 부분이긴 하지만, 중국인 관광객이 정말 많았고... 사진에 진심이며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언성을 높이는데 거리낌이 없는 중국인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뜬금없이 나타난 오락실!
레이징 스톰 오랫만이네
여전히 현역인 펌피럽
어지간하면 있는 에어하키
귤은 어딜가나 있다...
앉아서 하는 기계도 몇 대 있었다.

걷다보니 뜬금없이 오락실이 있었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오락실을 즐기는 사람이 있을까.. 했지만, 의외로 젊은 커플이 약간 있었고... 스티커사진이나 오락실노래방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도 소화를 촉진할 겸 노래방에서 한 곡씩을 불러보았다. 생긴지 얼마 안 된 느낌이었는데, 음.. 오래도록 번창하시길.

말과 격투를 벌였다(거짓말)
어째선지 유명한 랜디 도넛
여기서 사진 많이들 찍더라

산책로는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구성이었는데, 올라와서 큰길을 따라 다시 주차장 쪽으로 향하다보니 랜디스도넛RANDY'S DONUTS 라는 큼직한 도넛가게가 있었다.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어서 들러보았는데, 구경을 좀 하다가 간식이나 아침으로 먹을 이 가게의 추천 도넛을 두 개 사서 나왔더랬다. 제주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맛집은 아니었지만, 사진도 찍을 겸 잠깐 들러볼만 한 것 같기도 했다.

카페 트라이브에서. 운 좋게 좋은 자리.
한라봉 수플레였나...

도넛 가게를 나와서, 원래 계획했던 카페 트라이브 라는 곳을 들러보았다. 이 곳의 유명한 메뉴 중 하나인 한라봉 수플레를 시켜보았는데, 주문하고 20분 가량 기다려야 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창 밖의 경치를 바라보며 다리를 쉰다고 생각하면 별로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았다. 실제로 나온 수플레는 비주얼과 맛을 모두 잡은 메뉴이기도 했고. 여기서 차와 수플레를 마시면서 앞으로 일정 동안 수많은 귤(과 친구들)을 먹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의외로 별로 그렇지도 않았다...

서울 촌놈에게는 검은 현무암 해안과 투명한 바닷물, 화창하진 않았지만 밝았던 하늘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힐링이 되는 것이었다. 차를 마시고 다리를 조금 쉬다가, 슬슬 숙소로 이동해 볼까 하고 협재를 향해 출발하기로 했다.

사진이 많은 관계로, 결혼 10주년 여행1일차~02로 나눠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