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kishen의 기억 제4막 - 색선희준 블로그

13. 섭지코지

섭지코지는 이름만 들어봤을 땐 외국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제주방언이라고 한다. 뒤가 코지라서 일본어인가...하는 생각이 든 건 내 뇌가 오덕하기 때문이라고 살짝 반성을 하면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책로를 찾았다. 주자창에는 여기저기서 자주 볼 수 있는 매점들이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오는 길에 산 레드향과 천혜향이 있었기에 구매할 일이 없었다. 산책로가 어디서부터 시작인지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일단의 관광객을 이끌고 온 어느 가이드분의 영어 설명을 함께 얻어듣다가 산책로로 향했다. 그 관광객 무리가 필리핀에서 오지 않았을까 하는 살짝 반가운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산책로를 조금 오르자 덮쳐오던 강렬한 바닷바람 덕에 그런 생각은 곧 날아가 버렸다.  

섭지코지 산책로는 길 끝에 있는 글라스하우스에 도달하기까지 몇 개인가 사진찍기 좋은 구조물들이 있었다. 산책로에 접어들어 첫 번째로 만날 수 있는 전망대부터 벌써 바다와 풍경이 대단했다. 이미 지난 이틀간 많은 바다와 해변과 바람을 만끽해 왔지만, 이 섭지코지의 해안은 또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비록 내내 강렬한 바닷바람을 마주한지라 추웠던 기억도 있지만, 사진에서 보실 수 있다시피 구름이 많지 않고 하늘이 화창해서, 바다를 감상하기 정말 좋은 날씨였다.. 고 하겠다.

첫번째 전망대에서 찍어본 파노라마

첫번째 전망대에서 사진을 좀 찍다보니, 계속해서 산책로를 올라오는 사람들의 무리가 보였다. 혼잡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인파가 많이 늘어나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던지라, 서둘러 산책로를 다시 따라갔다. 조금 가다보니, 언덕 위에 뭔가 동화속에 나올 것 같은 집이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 가보니 해당 건물은 영업을 종료하고 버려져있는 것 같았다. 안에 들어갈 수도 없었고, 입구로 보이는 건물은 보기 흉하게 버려진 폐건물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누가 인수하지 않더라도 어떻게 깔끔하게 치워놓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한때 동화속의 과자집을 보여주던 건물을 지나쳐갔다.

조금 더 걸음을 옮기자, 이번에는 등대가 나왔다. 계단이 다소 가파른데다 높아 보여서 살짝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앞선 사람들이 모두 당연하다는 듯이 계단을 오르고 있어서 우리도 자연스럽게 등대를 올랐다.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와 경치는 또한 좋았고, 멀리 목적지인 글라스 하우스와 그랜드 스윙이 보였다. 역시 강한 바람 때문에 힘들긴 했지만, 우리의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안도 다다오의 글라스 하우스
1층의 카페에 도착
망고쥬스와 커피

글라스 하우스는 1층에 기념품점과 카페, 2층이 레스토랑이라는 구성이었다. 이미 점심을 먹고 왔기 때문에 레스토랑은 밖에서 살짝 구경만 해보고, 1층의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바람 때문에 추위를 느끼긴 했지만, 약간 빠른 걸음으로 오다보니 몸에서는 열이 나는 것 같아서 시원한 망고쥬스를 시켜보았다. ...다음에 오면 커피를 마셔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몇 시간 만에 인터넷을 여니, 이 날이 일본의 만화가 고 도리야마 아끼라 님의 부고가 알려진 날이었더랬다. 카페에 앉아 한숨돌리려고 폰을 켰다가 잠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더랬다. ZARD의 고 사카이 이즈미 님과 고 신해철 마왕님 이후 아마 가장 강렬한 유명인의 사망소식이 아니었나 싶었다....

14. 숙소, 그리고 석식

섭지코지를 떠나서 다시 차를 몰고 다음 숙소로 향했다. 다음 일정으로 성산일출봉을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추운 바람을 맞으며 산책로를 돌아나와 차에 오르고 보니, 따뜻한 차 안에서 뭔가 피로가 몰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강행군이라고 하기에는 널널한 일정이긴 했지만, 3일째 밖에서 바람을 맞으며 돌아다니는 일정을 소화하다보니 피로가 쌓인 건가 싶었던 것 같다. 그리 길지 않은 거리를 이동해서 숙소에 도착해 보니, 창에서 보이는 풍경이 또한 썩 괜찮았더랬다. '봄그리고가을'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가진 숙소의 시설은 꽤 괜찮아 보이긴 했는데, 뭔가 비수기의 한적함이 느껴지면서 그저 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게 없지 않나 싶기도 했다. 

시험삼아 침대에 누웠다가, 헛! 하며 눈을 떠보니 두 시간이 흘러가 있었고, 우연히도(...)저녁을 먹기 좋은 시간이 되어 있었다. 이 날 저녁 식사로 생각했던 것은 흑돼지 바베큐였는데, 숙소에서 연락하면 차량이 픽업을 와준다는 편리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 우리와 같은 숙소에 묵었던 젊은 어느 커플과 함께 픽업차량을 타고 식당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었다.

고기는 언제나 옳은 법이라, 저녁식사를 느긋하게 즐길 수 있었다. 특히, 여기서만 먹어본 '표고와사비'는 그냥 먹어도 맛있고 고기쌈에 넣어 곁들여먹으면 감칠맛을 더해주는 최고의 반찬이었다. 돌아가는 길도 픽업서비스가 지원되었기에, 운전할 걱정이 없어져서 여행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며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올때와 같은 길을 더듬어, 숙소에 도착하여 일정을 마무리 하기로 했다. 이제 남은 일정은 하루... 제주 여행이 끝나감을 느끼며, 마지막 날은 낮잠으로 시간을 날리지 않고 최대한 알차게 마무리하기를 다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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